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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9 20:25 수정 : 2013.04.20 09:36

김양희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평소 드라마를 ‘글’로 읽다가 방송 담당 부서를 옮겨 ‘눈’으로 보게 된 ‘미즈 김’ 기자입니다. 꾸벅~.

드라마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ㄱ씨.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드라마는 꼭 봅니다. 하루는 1~4회를 ‘다시보기’로 다 몰아봤다고 합니다. 드라마 보는 모습을 곁에서 본 ㄱ씨 동생이 말하네요. “정신없이 막 웃다가, 심각해지다가, 또다시 키득키득 웃는다”고. ㄱ씨가 푹 빠진 드라마는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월화극 <직장의 신>(<직신>)입니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이미 본 사람들은 “에피소드가 비슷해서 안 본다”고도 하지만, <파견의 품격>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대기업 과장인 ㄱ씨가 말합니다. “우리 회사 도서관 사서가 비정규직이었어. 새 책이 들어오면 책 표지를 싸는 것도 좋아할 정도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게 눈에 보였지. 그런 모습이 좋아 보여서 커피도 몇번 사주고 그랬는데, 나중에 그러더라고. ‘회사에서 2년 됐다고 관두라고 했다’고. 연장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니까 바로 해직을 통보했나 봐. ‘꼭 시험 쳐서 정규직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ㄱ씨 회사의 비정규직 사서의 모습은 <직신> 속 ‘정주리’(정유미)에게 그대로 투영됩니다. 정주리는 와이장 그룹의 3개월 비정규직 사원입니다. 스펙도 변변찮고, 실수투성이에 성격도 다부지지 못해서 정규직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뺏기지요. 첫 월급날에는 학자금 대출금이 빠져나가 통장 잔고가 텅 빕니다. 수많은 한국의 비정규직들의 모습이 대부분 그러하겠지요.

정주리가 동경하는 장규직(오지호) 팀장은 상사에게 노골적으로 아부하고 비정규직도 무시하지만, 그의 신세도 비슷합니다. 실수를 하면 사표 쓸 걱정을 하고, “이번달도 무사히 월급을 탔다”고 안도하지요. 그래서, 장규직이 직장에서 퇴근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내일 보자”인 것 같습니다. 정주리는 말합니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된다. 그 하찮은 전구에도 급이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은, 급 높은 전구(정규직)도 수명이 다하면 가차없이 버려진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도 악착같이 다른 전구보다 더 빛나려고 하고.

하지만 <직신>은 슬프고, 칙칙하고, 우울한 드라마가 아니라, 코믹 드라마입니다. 다소 과하게 극을 휘어잡는 미스김(김혜수)이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본명 ‘김점순’보다 존재감 없이 ‘미스김’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3개월 단기 계약직 미스김은 ‘직장의 신’이자 ‘슈퍼우먼’입니다. 문서 정리, 정수기 물통 교환 등 소소한 일부터 포클레인, 버스 운전까지 다 할 줄 압니다. 미용사, 항공기 정비 등 자격증만 무려 124개입니다. 그리고 오후 6시만 되면 어디에 있든지 하던 일을 멈추고 칼퇴근을 합니다. “퇴근시간입니다만”이라는 말과 함께. 업무시간 외의 일은 모두 ‘수당’ 처리합니다. 회식도 수당을 받고 참석하지요.

비정규직 파견업체에 다니는 20년차 직장인 ㄴ씨가 말하더군요. “간절하게 정규직을 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원하는 20대도 있어요. 자기 스펙으로는 절대 다닐 수 없는 곳인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밖에 나가서는 회사명만 말하지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대우가 훨씬 좋기도 하고요. 욕심만 버리면 야근 없고, 수당도 나오고, 2년마다 잡매니저가 알아서 일도 구해주고요.” 물론 일부의 얘기일 것입니다. 꿈을 좇기 어려운 시대에, 스스로 꿈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요.

언제부터일까요. 회사는 꿈을 이루기보다는 다만 돈을 버는 곳이 됐고, 구성원들 사이에도 등급이 생겼습니다. 듣기 좋게 ‘한가족’이라고 포장되지만 차별이 넘쳐나지요. 정 줄 곳 없는 사회에서 비극적인 선택은 늘어갑니다. ‘천하무적 미스김’을 만든 것도 이런 사회겠지요. 차별 속에서 생존의 방법을 터득해야 했고, 그게 극대화되면서 자격증이 넘쳐나는 ‘미스김’이 탄생했으니까요. 아마 미스김은 앞으로도 150개, 200개의 자격증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그렇겠지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때때로 ㄱ씨의 머릿속에 찾아가 가끔씩 둥지를 트는 그 도서관 사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퇴근시간이라 이만 총총.

김양희 오피니언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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