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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0 20:52 수정 : 2013.05.10 21:4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갑질하는 기자가 되지 않으려는 친절한 기자 윤형중입니다. 저는 지난해 경력기자로 <한겨레>로 옮겨 두달 전부터 토요판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기자랑 교수, 검사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누가 계산을 하는지 아세요? 정답은 식당 주인이에요. 그만큼 기자, 검사, 교수들이 밥값을 안 낸다는 얘기죠.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들을 비꼰 겁니다.

웬 밥값 얘기냐고요. 밥값은 중요합니다. 갑을을 가르는 기준이 되거든요. 대개 밥값을 안 내는 쪽이 ‘갑’이 됩니다. 심지어 갑을관계가 뒤바뀌면 계산하는 쪽도 바뀝니다. 디스플레이 업황이 좋을 땐 엘지디스플레이 사장이 아시아나항공 사장에게 밥을 사고, 안 좋을 땐 그 반대가 되죠. 업황이 좋으면 항공편 잡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이처럼 ‘누가 밥값을 내느냐’가 중요한 기준인데도 밥값을 참 안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자’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기자의 모습은 제가 이 세계에서 경험한 첫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직업상 만남이 잦은데도 기자들은 커피값, 밥값, 술값을 잘 내지 않습니다. 기자가 되기 이전엔 이 정도로 얻어먹고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분들은 모르겠죠. 저도 예외가 아니라 부끄럽긴 합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취재원들은 기자에게 밥을 살까요. 기자와 언론이 갑이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요즘 많은 언론들이 사회 곳곳의 갑을관계를 다루고 있는데요. 언론이 자행하는 ‘갑의 횡포’는 간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갑질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많은 기자들이 회삿돈이 아닌 기업과 공공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갑니다. 기자들을 상대하는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한 매체의 기자가 해외출장에 가족들을 데려와 애초에 책정한 것보다 비싼 호텔방을 예약해달라고 요구해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습니다.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기업이 출시한 신제품이나 비싼 공연티켓 등을 출입기자에게 얻어 오라고 요구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을’인 기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취재원에게 ‘갑질’을 해야 하는 경우죠. 언론사가 엠티나 워크숍, 피크닉 등을 갈 때 기업이 숙박시설을 예약해주고, 기자들에게 나눠줄 각종 경품을 지원하곤 합니다. 이럴 때 센스있게 잘 도와주는 기업은 큰돈 안 들이고 괜찮은 로비를 하는 셈이죠. 지금까지 나열한 사례들은 찌질한 갑질에 불과합니다.

진짜 언론의 갑질은 ‘수익’과 관련돼 있습니다. 업계에선 ‘광고를 받는 두 가지 방법’이 쪼찡과 조지기라고 합니다. 쪼찡은 일본말 조친(提燈)에서 유래한 말로 홍보성 기사를 의미합니다. 효과는 쪼찡보다 조지는 것이 좋습니다. 2년 전 제가 한 대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을 때 이 기업의 홍보실장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얘기해봐라. 임원과 상의해서 최대한 들어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분기·반기별 광고수주 실적을 확인한 뒤에 특정 기업을 지목해 기사 쓸거리를 찾아오라고 지시합니다. 이럴 때 괜찮은 기삿거리를 찾아서 해당 기업의 고위급 임원이 언론사로 찾아오게끔 하는 기자는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도 하죠. 종합편성채널을 준비했던 언론사들은 자본금을 유치하기 위해 몇몇 기업을 상대로 무력을 과시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종편 언론사들은 거꾸로 주요 주주로 참여한 기업들의 ‘을’입니다. 조선일보가 동국제강, 대한항공, 에스피시(SPC)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잘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언론사가 참가비가 일인당 수십만원, 수백만원에 이르는 세미나, 포럼 등을 자주 여는 이유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갑의 지위를 활용해 출입하는 기업과 기관에 표를 팔 수 있기 때문이죠. 일부 언론들이 운영하는 투자정보 전문 뉴스서비스 역시 기자들이 수십만원짜리 구독권을 기업들에 판매하곤 합니다.

수습기자 때 기사를 쓰려고 회의시간에 제출한 아이템이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였습니다. 그때 ‘밥을 누가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사회 각 부문의 갑을관계를 정리해 ‘지위를 남용하는 갑’과 ‘유착된 갑을관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장이 “너랑 나 중엔 누가 갑이냐”고 물었고, 한 선배가 “밥 먹을 때 부장이 계산하니까 얘가 갑이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이 아이템은 묻혔습니다. 요즘 저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갑의 횡포를 고발하고 싶은 분들은 연락 주세요. 밥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윤형중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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