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4 20:05
수정 : 2013.06.1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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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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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이상문학전집 1>, 이승훈 엮음, 문학사상사, 1989
<이상문학전집 4>, 김윤식 엮음, 문학사상사, 1995
한국군이 가장 갖고 싶은 첨단 무기 중 하나는 에이왁스(AWACS,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일 것이다. 하늘을 날며 기상 정보 제공부터 경계, 탐지, 전투가 가능하다. 수백㎞ 거리 밖을 볼 수 있어 서울에서 평양 거리의 자동차 번호판이 잡힌다고 한다. 물론 미국 거다. 하늘에 뜬 비행기가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날씨 예보만 한다 해도 나는 무서울 것 같다. 머리만 볏단에 숨기는 꼴이겠지만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칠 것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소망은 “바다가 육지라면” 날아가 임을 보고 싶은 이동의 자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을 장악하려는 의지다. 대상을 통제하려면 일단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
시는 모든 작가들의 욕망. 시가 언어의 제왕인 이유는 은유, 메타포(metaphor)이기 때문이다. 해석과 상징을 거느린 그 자체로 사전이다. 그러나 종종 메타포는 비윤리적이다. 인류의 언어는 여성을 타자로 묘사하는 성별 메타포 없이는 불가능했다. 또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특정 질병에 대한 이미지 낙인은 인간의 가장 잔인한 면모다. 수전 손태그는 자신의 암 투병과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몸의 고통뿐 아니라 병의 이미지와도 싸워야 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손태그의 외침대로 글자 그대로 시를 읽으면 어떨까. 그것도 한국문학사상 가장 난해하고 해석이 분분하다는 ‘오감도’(烏瞰圖)를 말이다. ‘오감도’는 15개로 이루어진 연작시로 이 글의 제목은, 첫번째 작품 ‘詩第一號’의 15행이다. 이 작품이 가장 논쟁적이다. 1934년 이태준의 추천으로 30제 예정으로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를 시작했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중단되었다. 오감도가 조감도의 오타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오감도’에 대한 해석들. 초현실, 절망, 환상, 난해, 공포, 아방가르드, 심지어 민족독립을 위한 병법까지… 나는 공포 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감도는 현실적이며 직설적이다.
건축학도였던 그의 공간 감각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3차원적 사유를 가능케 했다. 조감도는 근대적 인식론, 원근법의 대표적 방식이다. 원근법은 한 사람의 시선만 허용한다. 그러므로 조감도는 온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간주되는) 신의 의자다. 조감은 불가능하지만 조감도는 존재한다. 그 의자에 앉고 싶은 인식자에게 세상의 영장(英將)이라는 착각을 주는 보물 지도 같은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흉조인 까마귀가 내려다보고 있다. 그가 새와 동일시했다는 기존 해석은 비평가의 자기 욕망이다. 시구 그대로 읽으면 그렇지 않다. 이상은 피사체와 동일시했다. 시인은 ‘에이왁스’의 하늘 아래, 막힌 골목을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묘사한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악명 높은 그의 붙여 쓰기는 이름 ‘箱’(상 자)과 함께 폐쇄 공포를 더한다(일본어도 띄어쓰기가 없다).
근대인들, 특히 지식인은 자신을 새와 동일시하고 조감(인식)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그 보편성이 구획한 세계에 사는 겁에 질린 민초가 있다. 초현실? 내가 보기엔 해석의 여지가 없을 만큼 현실적이다. 식민지 시대 이상의 종속적 남성성은 새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뛰어난 각도의 위치성과 정치학을 가능케 했다.
그에게 피사체와 인식 주체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는 탈식민주의적 상상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늘 위가 아니라 건물 옆에서, 지하에서, 뒤에서, 아주 멀리서는 알 수 없다는, 즉 누구도 전경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오감도’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정상 사회에서의 정신 분열, 예술가의 윤리가 낳은 걸작이다.
이상은 조감의 주체도 민초도 될 수 없었던 자기 한계에 솔직했다. 다만 건강이 좋지 않아 동경하던 도쿄에서 멜론과 레몬을 찾으며 27살에 죽었고, 신화화되었다. 1972년에 나온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는 친구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다. 내 책상 앞에 있다.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예술가의 평범한 얼굴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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