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3 19:17
수정 : 2013.08.23 21:39
|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크레용팝 일베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 인기 많은 스타 논란 없을 날이 없는 건가요. 소속사인 크롬엔터테인먼트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누리꾼의 문제제기는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크레용팝 일베 논란에 대해 여러분과 고민해보고 싶어 ‘친절한 기자’로 나섰습니다.
저는 <한겨레> 사회부에서 일하다 최근 토요판팀으로 옮겨 새로운 활약을 준비중인 허재현입니다. 길바닥에서 전투적(?) 취재를 많이 해 ‘허 열사’라는 별명도 얻었고, 트위터에서 이름이 알려져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가끔 언론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싱글입니다.
자, 다시 크레용팝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들은 정말 ‘일베충’(일간베스트저장소 누리집을 이용하는 누리꾼을 지칭하는 말)일까요? 일단 본인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크롬엔터테인먼트는 21일 공식 누리집을 통해 “(멤버들은) 일베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여러 자료를 살펴보아도, 크레용팝이 일베 활동을 했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합니다. 누리꾼은 크레용팝 멤버(웨이)가 ‘여러분 노무노무 멋졌던 거 알죠?’라고 트위터에 글을 쓰거나, ‘쩔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동영상 자료를 찾아내 이들이 일베 활동을 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일베에서 ‘노무노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데 쓰이는 용어입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죠. ‘쩔뚝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김 전 대통령이 교통사고로 위장된 테러의 후유증으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을 두고 조롱하는 표현인 듯합니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낮춰 부르는 ‘노무노무’와 ‘쩔뚝이’ 등 용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이들 단어는 일베를 제외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쩔뚝이는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를 사용했다고 무조건 일베 회원으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합니다. 일본말 할 줄 아는 사람이 일본인일 가능성은 크지만, 일본말 하는 사람이 모두 일본인은 아닌 것처럼요.
크롬엔터테인먼트의 황현창 대표가 일베를 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마케팅을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한 것은 한 것이지요. 심지어 황 대표는 트위터로 “디씨와 일베에 크레용팝을 전도하시는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멋지노”라며 일베 회원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멋지노’는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 ‘노’를 활용한 언어유희인데, 어미 끝에 ‘노’를 붙이는 것은 일베 회원들의 특징입니다.
크롬엔터테인먼트는 “일베는 팬들이 홍보글을 올려주신 사이트 중 하나로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 특정 정치성향 분명한 댓글이 올라오는 사이트임을 인지하고 접속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황 대표는 또 “일베 외 여러 커뮤니티에 가입했지만 한 사이트만 집어서 얘기해 당혹스럽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누리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 건 이런 해명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몰랐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을까요. 아니, 아무리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일베가 어떤 누리집인지 모를 수 있을까요. 포털사이트 인터넷 뉴스는 다들 한번쯤 클릭하면서 살잖아요. 걸그룹 ‘시크릿’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일베에서는 민주화를 ‘의식화’라는 의미로 쓰거든요)이 가요계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아무튼 일베가 어떤 성격의 커뮤니티인지 몰랐다는 해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소속사 대표의 무지로 인해 재능 있는 가수가 계속 불편한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에게 전화해 견해를 물어보니 “모든 루트를 활용해 소속 가수를 홍보하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 가지만 사회적 분란의 소지가 있는 사이트를 활용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크레용팝을 응원합니다. 일단 노래가 좋고, 매력 있어요. ‘귀여운 얼굴과 헬멧 쓴 점핑’은 제 마음을 녹여요. 제 이어폰에서도 ‘빠빠빠’가 출근길에 무한반복 되고 있답니다. 많은 아저씨 팬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소속사가 상식적이고 감동적인 홍보 활동을 해줬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어떤 크레용팝 팬께서는 제게 트위터로 “오유(오늘의 유머: 진보 성향 누리꾼이 모이는 유머 누리집으로 알려져 있음)는 되고 일베는 안 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묻더군요. 답해 드립니다. 정말 일베가 보수·우익 커뮤니티여서 문제일까요. 소수자 비하와 지역감정 조장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catalunia@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