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아랍의 봄’이 ‘피의 여름’을 지나 ‘반동의 겨울’로 치닫고 있다. 아랍의 봄에 밀려 투옥됐던 이집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병원 연금’ 상태로 석방됐다. 반면 아랍의 봄의 최대 성과인 첫 직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는 변호인 접견권도 보장되지 못한 채 구속 상태이다. 무바라크의 석방 과정은 이집트 혁명이 어떻게 배반당했는지를, 혁명의 반동이 어떻게 찾아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과도정부에 항의하는 시민 1000여명이 학살된 시기에 무바라크마저 석방하는 조처가 ‘무신경한 몰염치’가 아니라, ‘정교한 반동 과정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무바라크가 기소되고 투옥된 주 혐의는 자신의 하야를 부른 시위대 살상이다. 법원은 무르시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던 지난해 6월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으나, 모순투성이 판결문 내용은 그의 석방을 예고했다. 판사는 무바라크가 시위대에 발포한 경찰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고, 그의 측근들이 그 지휘계통에 있다는 혐의도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판사는 무바라크가 30년 동안 권좌에 있었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나자, 당시 이집트에서는 광범위한 항의시위가 터져나왔다. 무르시 정부가 구체제 세력에 영합한다는 비난이 나왔고, 이 판결은 반무르시 시위의 출발점이 됐다. 항소법원은 이 판결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판결을 무효화했고, 무바라크에게 재심을 명령했다. 이집트의 사법체계상 최대 구속기간은 2년이다. 지난 4월 무바라크의 구속기간이 만료되자, 검찰은 ‘이스라엘 가스 수출 대금 유용’, ‘대통령궁 유지보수 자금 유용’, ‘국영언론으로부터 뇌물 수수’ 등의 별건 혐의들을 차례로 들이대며 그를 계속 구속시켰다. 하지만 이 혐의들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친무르시 시위대에 대한 학살 사태가 절정에 올랐던 지난주 법원은 무바라크의 마지막 혐의인 ‘국영언론 <알아흐람>으로부터 받은 뇌물’은 ‘모두 상환했다’는 식으로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애초부터 이집트 사법부는 반동의 근원지였다. 법원은 무르시 취임 시기에 그의 자유정의당이 다수인 의회 해산을 판결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집권 내내 의회 운영을 막는 한편 신헌법을 제정하는 헌법회의 해산도 예고했다. 무르시는 국정의 한 축인 의회가 공백인 상태에서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었다. 무바라크의 학살 혐의 재판 때 첫 18일 동안 수천건의 증언이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고, 이집트의 독립언론인 벨 트루는 독립적 사법감시단체인 이집트인권계획(EIPR)의 카림 에나라를 인용해 <포린 폴리시>에 기고했다. 시위대 학살의 집행자였던 경찰은 매 국면 수사를 훼방하면서 부실한 증거를 내놨다고 이집트인권계획의 변호사 호다 나스랄라는 전했다. 그래도 의문점은 남는다. 군부와 과도정부는 구체제의 하수인인 법원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수많은 무르시 지지자들을 학살한 이 민감한 시점에 왜 효용가치가 사라진 독재자를 석방하는 ‘무신경하고 대담한 조처’를 태연히 했느냐는 것이다. 무바라크 석방에 즈음한 이집트의 분위기는 이 조처가 결코 국민의 공분을 부르는 무신경한 몰염치가 아님을 보여준다. 외신들은 무바라크 석방에 대해 이집트 국민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체념의 분위기만 남아 있다고 일제히 전한다. 그를 몰아낸 시위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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