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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27 20:01 수정 : 2013.09.27 20:28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김민경 기자입니다. 만날 제가 제목을 달던 ‘친기자’에 이렇게 직접 숟가락을 올린 건 순전히 ‘사학과 출신’이란 과거사 덕분입니다. 뉴라이트 성향을 가진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의 23일 국사편찬위원장 내정 소식은 제 안에 숨어 있던 ‘역사학도의 디엔에이(DNA)’를 깨워줬거든요.

유영익 교수가 누구입니까. 역사 관련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유 교수를 대표적인 ‘이승만 찬양론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각종 저서와 강연 등에서 그를 ‘국부’로 규정한 것은 기본입니다. 그에 관한 유 교수의 ‘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유 교수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해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하에서 다져진 교회의 기반은 1960년대 이후 남한이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로 부상하는 도약대가 됐다. 이는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에 기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적에 비견된다.”(<건국대통령 이승만>, 2013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빗대 많이 당황하셨나요?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대통령이 이룩한 업적들은 조선왕조의 제도적 기반을 다진 제3대 왕 태종, 고대 중국의 문자와 제도를 통일한 진시황,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고 그들에게 율법을 전수한 모세 등 일련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업적들에 비교될 수 있다.”(‘이승만, 독립과 부강의 기반을 다진 국가창건자’, 20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태종(이방원), 진시황을 거쳐 심지어 모세랍니다. 맞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한 뒤 홍해에 이르러 바닷물을 두 쪽으로 갈랐다는 ‘모세의 기적’의 그 모세 말입니다. 아, 미군정청 사령관이었던 존 리드 하지의 말을 재인용해 ‘야곱’으로도 비유했더군요.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한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고야 만’ 구약 성경의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필생의 대업이었다.”(‘이승만, 건국대통령’, 2008년)

유 교수는 어떻게 이처럼 열렬한 ‘이승만 예찬론자’가 됐을까요. 유 교수는 평소 이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소홀히 다뤄져 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공과 과를 따지더라도 ‘7 대 3’ 정도는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공이 7이랍니다. 유 교수의 논문 ‘이승만, 건국과 집권에 성공한 외교독립운동가’(2010년)를 보면 그는 이 전 대통령을 가리켜 “가장 돋보이는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한 자질과 경력을 구비한 인물”로 규정했습니다. 그의 과오를 감안하더라도,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한국전쟁을 극복해 경제발전의 기틀을 쌓은 그의 공은 ‘건국 대통령’이란 호칭에 걸맞다고 말합니다. 5년 전, 8월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답게요.

‘이승만 예찬론’은 박정희 미화, 일제 시기 경제성장 등을 주장해온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이들의 역사관이 비판받아왔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주장이 헌법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법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4·19 혁명을 계승했습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우리나라의 기반으로 규정한 것이죠. 자연히 친일이나 독재는 그 반대에 서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승만이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와해시켜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고, 부정선거와 12년 장기 독재로 민주주의를 유린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내정은 최근 논란이 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편향성, 김무성 의원의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 등 일련의 ‘역사 전쟁’ 흐름 속에 있습니다. 유 교수는 뉴라이트의 ‘이론적 지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 멤버일 때 <대안교과서>를 감수했고,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만든 ‘한국현대사학회’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검정 합격 발표 직전, 한국사를 수능 필수화 하겠다던 정부는 이제 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국편 위원장으로 뉴라이트 성향의 인물을 내정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에서 독립운동사를 다룬 34쪽 중 11쪽에 걸쳐 이승만의 이름이 42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유 내정자의 임명 뒤, 앞으로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우리는 더 많이 보고 듣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은 과한 걸까요?

김민경 토요판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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