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무개씨가 임시거주하고 있는 외삼촌 집인 경기도 가평군 아파트 앞에 3일 오후 취재진들이 몰려 있다. 가평/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우선 배꼽 인사부터 드립니다. 전 친절하니까요. 안녕하세요, 사회부 24시팀의 정환봉입니다.
오늘은 ‘뻗치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가 뻗치기인데, 뻗치기를 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경우는 진짜로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을 땝니다. 뻗치기를 해도 취재 대상을 만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전화를 하거나 따로 약속을 잡지, 그 고독하고도 지루한 뻗치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기자들의 뻗치기가 가장 집중되고 있는 곳은 아마도 경기도 가평의 한 아파트일 겁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을 낳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임아무개씨가 머무는 곳이죠. 이 여성은 추석 전부터 외삼촌 집인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여성처럼 일반인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보통사람이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문제로 입길에 오르는 건 더 드문 일이죠. 그리고 숱한 기자들이 그런 사람의 집에서 뻗치기 하는 일도 매우 희귀한 일입니다. 최근 있었던 ‘단체 뻗치기’의 대표적인 사례를 찾아봐도 전두환 전 대통령,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등처럼 전직이나 현직 고위 공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카메라 플래시 세례 정도는 받아본 경력자들이죠. 일반인에게 수십명의 기자와 십수대의 카메라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자들 개개인이 무슨 악의를 갖겠습니까만, 집단으로 모일 때는 충분히 악의로 비칠 수 있고 또 그게 기자들 처지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기자들은 뻗치기를 하다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정말 이 짓을 해야 하나?”
임씨의 경우는, 뻗치기에 결실이 맺어진다 해도 꽤나 곤란할 것 같습니다. “혼외아들이 맞나?” “채 전 총장의 아들을 낳았나?” 이런 질문을 해야 할 텐데, 딱 뺨 맞기 좋은 질문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질문이 뻗치기의 이유이니 질문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기자들도 사람인데 마음이 편할 리 있을까요? (때론 물벼락을 맞고 주거침입 혐의로 입건될 위기에도 놓입니다.)
그렇다고 “뻗치기는 나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솔직히 명쾌하진 못합니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사생활을 보도하거나, 그 보도의 비중을 키울지 줄일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각 언론사의 양심이나 편집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고도의 판단’을 하는 것보다 사실을 확인할 의무가 더 큽니다. 가장 비효율적인 취재 방법 중 하나인 뻗치기까지 해가면서 한마디를 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기자에게 주어진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뻗치기라는 취재 방식이 늘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임씨가 기자들의 뻗치기에 문을 닫아걸고 있는 동안 딱 한번 전화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기자인지라 최대한 예의를 갖춰 임씨에게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대답은커녕 수화기 너머로는 울음소리만 이어졌습니다. 특히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가평에서는 아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기자들의 뻗치기 이후로 아들과 통화한 지 10여일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뻗치기를 뚫고 나가다 얼굴이 카메라에 찍히고 세상에 알려지면 아들도 자신도 더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했습니다. 임씨의 울음에 별 위로를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임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한겨레>도 뻗치기를 해야 했으니까요.
열심히 취재하는 것과 폭력적으로 취재하는 것은 백지 한 장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임씨 외삼촌 집의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왜 인터뷰를 하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거나, 대화의 주인공이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는 채 엿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로 내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정확히 그 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가진 답은 없습니다. 적어도 어떤 선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과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겠죠. 임씨의 집 앞에서 ‘뻗치기하는’ 기자들이 반 발짝만 물러나는 등 그들이 취재에 응할 수 있는 환경을 언론 스스로 만들어주는 ‘단체 뻗치기의 집단지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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