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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5 18:03 수정 : 2013.11.15 21:41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한겨레 토요판팀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담당하고 있는 허재현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김학의 전 법무차관 무혐의 처분’과 관련해 말씀을 나누고자 이렇게 ‘친절한 기자들’에서 인사드립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으니 ‘그렇다면 별장 성접대는 모두 허위냐. 김 전 차관은 억울하게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냐’ 여러 궁금증이 드실 겁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지난여름까지 저는 사회부에 있었어요. 올해 3월 제가 취재했던 사건이 바로 이 ‘김학의 성접대 의혹’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경찰이 이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는 단독보도를 한 뒤, 수십명이 투입돼 취재를 벌이던 타 언론사에 밀려 계속 ‘물만 먹고’ 다녔던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합니다.

성접대를 한 것으로 알려진 건축업자 윤아무개씨 등을 만나기 위해 이분들 집 앞에서 한없이 기다려보기도 하고, 윤씨의 사진을 바라보며 ‘제발 한번만 만나봤으면’ 하고 꿈에도 그리기도 했지요. 하도 그리워해서 하마터면 그를 사랑하게 될 뻔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큰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지역의 건축업자가 제공한 별장 성접대 자리에 참석하고 다닌 분이 검찰총장 후보 중 한명이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도 큰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자, 이제 여러분이 정말 궁금해하시는 내용입니다. 별장 성접대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 사건을 자세히 알 만한 위치에 있는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별장 성접대는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김 전 차관이 참석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신원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있다고 합니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동영상 속 남자가 김 전 차관이 맞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범죄사실 입증과 관련 없어 말하기 적절치 않다”고 밝혔지만, 수사에 참여했던 분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면 ‘김 전 차관의 얼굴이 영상 속에 확실히 식별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때문에 김 전 차관이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았더라도 그가 도덕적인 비난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접대 제공자에게 설사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도, 그런 접대 자리를 거부하지 않고 즐겼다는 그 자체는 고위 공직자로서 큰 문제입니다. 성접대가 있었던 2008년 봄 당시 김 전 차관은 춘천지검 검사장이었습니다.

‘대가 없이 별장 혼음 파티를 즐긴 것이라면 개인 사생활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법적 소송을 당하고 있는 지역의 건축업자가 검사장에게 그런 대접을 하는 이유를 김 전 차관이 정말 모른 채 참석했을까요. 순수한 사생활로 볼 수 없습니다.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전 차관이 비록 처벌은 면했지만 김 전 차관은 스스로 떳떳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분이 법무부 차관까지 되는 검찰 내부의 문제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또 궁금한 것 한가지. 검찰이 대체 무혐의 처분을 한 이유는 뭘까요. 제 식구라서 ‘봐주기 수사’ 한 것일까요.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김 전 차관 혐의의 핵심은 특수강간입니다. 그러나 동영상 속의 여성들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고, 그 당시 관계 행위가 강간이 아닌 합의하에 이뤄진 측면도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입니다.

물론 동영상이 아니더라도 ‘강간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던 여성 두명이 있기는 합니다. 여성 중 한명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주장을 번복했고, 다른 한명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강간이 성립되지 않으면 뇌물죄(성접대)로도 처벌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뇌물죄 공소시효는 5년입니다. 김 전 차관의 처벌 공소시효는 올해 봄에 지났습니다.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그럼에도 검찰의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경찰은 “김 전 차관과 관계를 가진 여성들이 자발적인 상태에서 접대에 응했다고 볼 수 없다. 일반적인 접대 자리가 아니다”라며 검찰의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게다가 검찰은 건축업자의 계좌와 별장 등은 압수수색했지만 김 전 차관 집과 은행계좌 등의 압수수색은 시도도 안 했습니다. 어떤 수상한 돈의 흐름이 포착됐다면 별장 성접대가 단순한 자리는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검찰의 수사자료 등을 훔쳐 보지 않는 한 정확한 판단은 어렵습니다. 다만 이 얘기는 검찰에 하고 싶습니다. 지역의 유지들에게 수상한 접대를 받아온 검사가 과연 김 전 차관뿐이었을까요. 저희 기자들에게 전해지는 여러 정보로는 ‘그렇지 않다’에 가깝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접대받는 문화에 검찰이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허재현 토요판팀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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