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22 20:04
수정 : 2013.11.24 15:45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친절한 기자들 코너에 데뷔하는 정치부 송채경화입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낯 뜨거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3일 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일부 의원들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당대표를 노골적으로 조롱한 것입니다.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이라 불리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었습니다. 이 법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옆에 두고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 법을 “개 발에 편자 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댔습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원내지도부는 최근 들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거나 헌법소원을 통해 아예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국회선진화법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구체적인 법률 검토까지 하고 나섰습니다.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든 법안을 스스로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 이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건지, 그 시도는 과연 올바른 건지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우선 국회선진화법이 무엇이고 왜 만들어졌는지부터 간략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 국회에서는 집권여당이 날치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자 만든 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입니다.
지난해 18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된 이 법의 핵심은 날치기의 전제가 되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직권상정을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등에 한해서만 허용해 국회의장이 함부로 직권상정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대신 여야가 대립하는 쟁점 법안 처리가 한없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적 의원 5분의 3이 동의하는 안건에 한해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올리는 신속처리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수가 전체의 5분의 3에 미치지 못하는 155명이니, 새누리당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날치기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이 법을 무력화하려 나선 이유가 조금 짐작이 되시나요?
그동안 최경환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민주당이 이 법을 이용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습니다. 경제활성화가 시급한 시점에 야당이 예·결산안과 경제활성화에 필요한 법안 처리에 협조해주지 않아 국정이 마비된다는 겁니다. 최 원내대표는 20일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대로 방치된다면 국정이 마비되고 나라가 망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근거로 정기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야당으로서는 그나마 쥐고 흔들 수 있는 카드가 국회 보이콧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여당 원내지도부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국회 마비로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혼란의 책임은 결국 박근혜 정부가 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국회선진화법을 흔드는 것은 뭘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야 경색 국면의 원인은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여야 지도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당 원내지도부가 자신들의 정치력 부재에는 눈을 감은 채 애꿎은 국회선진화법을 탓하며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은 “야당과는 협의가 안 되니 다시 ‘날치기·몸싸움 국회’로 되돌아가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당 지도부의 이런 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을까요?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주도적이었던 남경필 의원을 필두로 한 15명의 새누리당 의원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이나 개정안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국회선진화법의 본질을 잘못 진단한 처방이다.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는 것은 폭력국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지금은 여야 원내지도부가 국회 정상화를 위해 대화와 타협에 나서 국회의 정상운영 방안을 찾는 정치력을 발휘할 때이지 장외에서 서로 비방할 때가 아니다”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한가지. 지난해 4월 “이미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한 것이고 국민들께 약속을 드린 것이기 때문에 처리가 이번에 꼭 되었으면 한다”며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앞장선 박근혜 대통령은 친박 핵심인 최경환 원내대표가 이 법을 무력화하려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송채경화 정치부 정당팀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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