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과학과 젠더-성별과 과학에 대한 제 반성>
이블린 폭스 켈러, 민경숙·이현주 옮김
동문선, 1996
11월. 계절에 대한 감상(感傷)에다 개인적 사연도 있고 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대해 쓰고 있었다. “소설의 본령인 단편문학…”. 그러다 내가 문학 전공자도 아닌데, 소설 독후감을 써도 되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돌이켜봐도 황당한, 그러나 의외로 쉽게 극복되지 않는 자기 검열에 나도 놀랐다. 결국 담벼락에 그려진 <마지막 잎새>는 바탕화면에 방치된 상태다.
몇 번 내 글에 대한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여성주의와 무관한 글인데도 “걸레”, “술집 ×”…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나는 걸레와 양초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변을 깨끗하고 밝게 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술집 여자’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술집 여자는 글 쓰면 안 되나? 나는 불쾌하지 않았다.
반면, 정치적으로 문제적인 비판에는 ‘뒤끝’이 있다. 혼자 오래 골몰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이 지면에 미국의 지원병제 문제를 지적한 스콧 펙의 징병제론를 소개했다. 어떤 ‘진보적 지식인’이 페이스북에 내 글을 두 가지로 비난했다. 하나는 내가 징병제를 주장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르는데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즉, 비전공자가 글을 썼다는 것이다(이후 다른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로 삭제한 듯하다). 전자는 당연히 오독이다. 문제는 후자다. 이런 식의 비난, 질문, 해명 요구는 내가 20여년 동안 겪어온 일이다. ‘여성’은 나의 일부분임에도 세상은 나의 존재를 ‘여성’으로 도배한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 ‘분’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공부 분야를 정한 다음, 영역 바깥의 글을 쓴다고 비난하는 이 ‘하느님’들은 누구인가?
비전공자? 굳이 말한다면, 나는 반(反)전공주의자다. 그것을 자랑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여성학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관점, 세계관,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정폭력을 소재로 석사논문을, 자주국방과 한-미 동맹의 논쟁 구도의 식민성을 소재로 박사논문을 ‘썼다’. 병역과 군사주의와 관련한 많은 글을 썼고 ‘활동’해왔다. 나의 첫번째 ‘논문’은 1998년에 쓴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 운동사”이다. 그러니까 나도 ‘전문가’?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다 보니 민망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나 자신을 “~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타인 특히 사회적 약자 집단에게 왜 이런 연구를 하느냐/안 하느냐는 지적은 인권 침해다. 남의 글을 내용이 아니라(이 경우는 그의 비판 내용도 틀렸다) ‘비전공’ 논리로 비판하는 것은 자기 허락을 받으라는 얘기?
이른바 통섭의 시대에 공부의 ‘유목민’에게 비전공자 운운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이 지식인인가? 그런 판관 노릇을 하고 싶으면, 이 정권에서 장관을 하시는 게 맞다. 공부의 의미를 독점하고 지식인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문지기들(gate keepers). 여기 들어오지 마. 그렇게 지킬 것이 없어서 겨우 지식의 문지기 노릇을 하는가?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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