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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9 20:40 수정 : 2013.12.03 18:03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동아시아 해양과 상공의 긴장을 높였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일단 중국에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자충수로까지 평가될 수 있을 정도다.

첫째, 이 구역에 미국이 전략폭력기를 출동시켜 정면으로 중국의 선포를 부정했다. 중국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체면을 구겼다. 둘째,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의 원인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완전히 공식화시켜 버렸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는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라고 천명했다.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센카쿠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냐는 문제는 그동안 일본이 미국에 확인해서 일본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는 정도에 그쳤다.

셋째, 주변국의 반발로 중국은 고립됐다. 무엇보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대중국 한-미-일 동맹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 기울었던 전임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었다. 한국도 미국을 따라서 중국이 선포한 구역에 들어간 이어도 상공에 전투기 초계비행을 했고, 방공구역을 확장하겠다고 정면 반발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아베 신조 일본 정부와의 마찰도 대중국 한-미-일 동맹을 저해했는데, 이제 해당국들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대승적으로 봐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다음주 한·중·일 순방에서 일본에 과거사 문제 정리를 위한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도 국제규범을 어겼다. 중국은 자국 영공으로 들어오지 않는 비행기라도 이번에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오면 신고를 하고 중국 당국의 관제를 따르라고 규정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성명을 통해서 미국 등은 자신들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에 자국 영공으로 향하지 않는 비행기들이 들어와도 신고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이번 조처는 조율되지 않은 중국 군부의 오버런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하지만 중국의 이번 조처가 결국 전략적 자충수로 판명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이 미국에 줄곧 내세우는 핵심이익 존중에 바탕한 신형대국관계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중국은 건국 이후 안보와 영토에 관한 핵심이익 문제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대처해왔다.

1979년 중월(중국-베트남)전쟁은 중국에 당장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한 전쟁이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혈맹이자 인근 소국을 침공했다는 비난에다가, 베트남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에 군사적으로도 망신을 당했다. 그 전쟁은 사실 소련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시 소련이 베트남 깜라인만(캄란만) 기지를 조차하려 하는 등 동남아에 세력을 확장하려 하자, 단호한 대응을 한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소련은 중월전쟁을 하면서 동남아로의 진출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증언했다. 화궈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키신저에게 “우리는 달리는 호랑이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중월전쟁을 설명했다. 키신저는 한국전쟁·중인(중국-인도)전쟁·중월전쟁 등 중국이 건국 이후 치른 일련의 전쟁과 분쟁들이 고도의 전략적 계산에서 치러졌다고 지적한다. 당장의 실리와 명분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장기적인 심리적 승리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전쟁에 관한 마오쩌둥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번 방공식별구역 설정은 현대 중국의 최대 안보 핵심 지역인 동남해안에서 미·일의 패권이 지배하는 현상을 뒤집기 위한 자기 근거를 먼저 만든 것일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을 철폐하라는 요구에 대해 중국 쪽은 일본이 1969년에 먼저 일방적으로 선포했다며 “44년 뒤에나 없앨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중국은 건국 이후 전쟁에서 당장의 전리품을 구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억제이고 자신에 대한 존중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바다와 하늘의 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이제 본격화됐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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