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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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리뷰 / 정희진의 어떤 메모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세계 여성의 역사>로잘린드 마일스 지음, 신성림 옮김, 동녘, 2005 얼마 전 처음으로 혼자 제주에 갔다. 이전에는 동생, 부모님과 같이 갔었다. 아침밥이 제공되는 민박집에 묵었다. 일어나자마자 밥상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밥이 있었다! 나는 평생(?) 입맛 까다로운 식구들의 식사 담당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끼니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전날 밤 감탄했던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의 별들이 밥상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과 깨달음이 왔다. 24시간 타인의 끼니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일상. 왜 세상은 가사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지, 나는 왜 평생 ‘초월적’이지 못하고 반찬거리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왜 사람들은 내 글이 사소한 이슈를 다루는데도 어렵다고 ‘강조’하는지… 크고 작은 수수께끼들이 단박에 해명되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세상 그 누가, 이 권력을 포기하겠는가. 식사 준비의 번거로움, 귀찮음, 먹는 사람의 평가, 남은 음식과 치우기 걱정은커녕 아예 그런 발상 자체와 무관한 삶. 누가 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권리와 ‘마음의 평화’, 자유를 포기하겠는가. 나 같아도 목숨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걸고 이 권력을 지키리라. 이 질서에 문제제기하는 한 줌도 안 되는 ‘꼴통 페미’들을 사냥하리라. 그들이 쓰는 글에 악플을 다는 데 인생을 바치리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평가만 하면 되는, 인간 최고의 안락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게다가, 세상은 완전 내 편(밥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닌가! 이런 망상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원래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성들에게 강의할 때 밥하기/먹기의 정치학을 논하면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한다. 다만 내 인생 최초(?)로 밥상이 ‘저절로’ 놓여 있으니 그 감격이 새로웠다. 이렇게 편하구나. 이 홀가분함. 평생 민박을 전전하며 살자. 지금은 1인가구도 많고 극소수지만 남성 전업주부도 있다. 한편, 먹을거리를 사기 위한 생계 부양과 식사 준비 노동은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남성은 한 분야에 종사하는 반면 여성은 양 영역에서 일한다. 가정에 소속된 여성치고 끼니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거의 없다.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Who Cooked the Last Supper-The Women’s History of the World). 물론 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동서양에 걸친 세계 여성의 역사다. 기존 역사에서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여성의 노동 없이 인류 역사는 단 하루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어이없고’ 동시에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 이런 일도 있었구나…를 연발하게 된다. “혁명 전의 중국에서는 매일 자기 아내를 때리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는 남자는 누구든 지하 감옥에 갇힐 수 있었다. 혁명은 구타를 금지했다. 남편들은 금지령에 기분이 상해서 불평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자기 아내를 때렸다. 나도 그런 관습을 지켰을 뿐이다. 하지만 해방 직후부터 여자를 때리기 힘들어졌다. 내가 울화통을 터뜨리면서 아내를 때리려고 하면 아내는 마오 주석이 그런 짓을 허용하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참을 수 없는 일이다”.(370쪽) 전적으로 마오 덕분은 아니다. 중국여성연맹의 힘이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선공산당은? 하는 궁금증과 함께, 대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아내에 대한 폭력 ‘근절’이 당의 호소로 가능했다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잠시나마 마오의 명령에 순종했다. 남녀 권력 관계는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초 교양과 시각 확장을 위한 필독서다. 나는 저자의 시선과 약간 다르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였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지 않았을까”였다. 물론 스타 요리사의 성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이다.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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