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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8 20:20 수정 : 2014.02.28 20:20

친절한 기자들

“왜 소치올림픽엔 흑인 선수가 없죠?” 독자의 이 편지 한 통 덕분에 친절한 기자로 돌아온 스포츠부 박현철입니다. 2012년 7월 ‘대법관 잘못 뽑으면 사람 목숨이 위험하다’고 첫 인사를 한 뒤 1년하고도 7개월 만이네요.

생각할 거리들이 많지만 궁금증부터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소치 대회는 물론이고 겨울올림픽은 여름올림픽에 비해 참가하는 흑인 선수가 적습니다.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겨울올림픽 종목은 크게 빙상(스케이트)과 설상(스키)으로 나누는데 이 스포츠들이 대부분 유럽 나라들에 뿌리를 두기 때문입니다.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네덜란드는 지형적인 특성 탓에 곳곳에 수로들이 있고 국민 대부분이 등하교, 출퇴근을 스케이트로 한다고 합니다. 가까이 두고 즐겨야 실력도 좋아지겠죠.

2012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아프리카 나라는 55개에 이릅니다. 반면 소치 대회에 참가한 나라는 모로코, 토고, 짐바브웨 3개국에 불과합니다. 중부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민 대부분은 평생 눈을 실제로 보기도 어려울 테죠. 이 세 나라 참가 선수는 모두 5명인데 그중 흑인은 1명뿐입니다. 이처럼 백인들이 많이 모인 올림픽이다 보니 흑인 선수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미국처럼 흑인(선수) 비율이 높은 나라는 뭐지?’라고 물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소치올림픽 공식 누리집을 통해 미국 선수 230명의 얼굴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봤습니다. 가끔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취재를 하기도 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샤니 데이비스를 포함해 우리가 ‘흑인’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들은 4명이었습니다. 230명 중 4명이니 1.7%군요.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했다는 미국도 흑인 선수 비중이 2%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 내 흑인의 비율은 14% 안팎입니다.

런던올림픽 때 미국 선수단은 530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다 들여다볼 수 없어 정확한 흑인 선수 비율을 알 수 없지만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농구대표팀과 유명 육상 선수들만 세어보아도 당연히 2%보다는 훨씬 높겠죠?

그럼 겨울 스포츠에 한해선 백인이 흑인보다 뛰어나서 흑인들의 참가가 적은 걸까요? 현재로선 백인들이 겨울올림픽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육상 단거리의 미국·자메이카 선수들과 중장거리 케냐·에티오피아 선수들을 떠올려보면 흑인이 백인보다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타고난 심폐지구력을 지닌 장신의 케냐 선수들이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 나간다면 네덜란드 스벤 크라머와 겨뤄볼 만하지 않을까요?

결국 흑인 선수들을 겨울올림픽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결정적인 이유는 ‘후천적인 환경’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 참가한 나라는 89개입니다. 그중 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26개국, 30%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독일 등 강대국이자 선진국 그룹인 ‘G8’ 8개국은 당연히 이 30% 안에 들었습니다. 여름올림픽도 마찬가지겠지만 국력이자 경제력이 스포츠 경쟁력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나 스키 같은 장비와, 얼음과 눈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필요하기에 겨울 스포츠엔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서양 선진국들이, 그 안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겨울 스포츠와 친할 수밖에 없는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캐나다 언론인 윌 브라운은 <허핑턴포스트캐나다>에 쓴 ‘내가 올림픽 무신론자인 이유’라는 칼럼에서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선 메달의 90%를 단지 9%의 국가들이 가져갔다.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올림픽 이념은 허구”라고 꼬집었습니다. “승자가 패자를 필요로 하듯” 올림픽 역시 국가들 사이의 약육강식 논리를 입증하고 강화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본 겁니다.

충분한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심각해지기 전에 끝을 맺어야겠네요. 얘길 하다 보니 여름·겨울 스포츠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뚜렷한 사계절 기후가 고맙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운동 능력이 뛰어난 흑인 선수들을 겨울올림픽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우사인 볼트가 육상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에 나갔다고 상상해 보세요. 번개같은 볼트의 막판 스퍼트를 보지 못했을 테죠. 그뿐인가요. 모태범의 2010년 밴쿠버 대회 500m 금메달도 쉽진 않았을 겁니다. 아, 여러분은 볼트와 모태범이 맞붙는다면 누굴 응원하실 건가요?

박현철 스포츠부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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