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1 20:26
수정 : 2014.04.11 21:04
친절한 기자들
그는 200명 넘게 몰려든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잠시 동안 눈물도 떨궜습니다. 그렇지만 흔들림 없는 자세로 2시간 반 동안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아냈고, 때로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한 어조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이 가진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미인의 눈물을 보고도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거든요.
누구 얘길 하느냐고요? 한순간에 ‘신데렐라’에서 ‘논문 날조자’라는 낙인이 찍힌 일본의 젊은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30) 일본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종합연구센터 연구주임입니다. 그는 지난 1월29일 저명한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에 스태프(STAP·자극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 세포와 관련된 연구 논문 2편을 발표해 일약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게 됩니다. 그러나 동료 연구자들의 여러 의혹 제기 등으로 논문에 대한 검증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이화학연구소 조사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어 “논문에서 2건의 연구 부정행위가 인정된다”는 판정을 내리고 <네이처>에 게재된 두 개의 논문 가운데 한 개의 논문에 대한 철회를 권고합니다. 이에 대해 지난 9일 오보카타 연구주임이 사건 발생 후 이어진 두 달간의 침묵을 깨고 기자회견을 연 것입니다.
그의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요?
인간은 모두 병에 걸립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심장이 고장 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불행히도 유일한 치료법은 이식밖에 없습니다. 심장을 기증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장을 인공적으로 배양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대부분의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이를 위해 인류는 인간의 모든 세포로 발전할 수 있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줄기세포 제작법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처럼 인간 수정란을 가공해 배아줄기(ES)세포를 만들거나 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하는 유도만능줄기(iPS)세포를 만드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상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볼까요.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굉장히 많은 여성들의 난자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이를 기증하는 여성의 건강에 많은 무리가 따르게 되고, 생명 윤리에 관한 다양한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보카타의 연구가 빛을 발한 것은 그 지점입니다. 그가 발표한 논문의 핵심은 갓 태어난 쥐의 림프구 세포를 약산성 처리하는 간단한 자극만으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줄기세포를 구할 수 있다면 인간의 불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이 예상되는 것이죠.
오보카타의 논문에선 크게 두 가지 부정이 드러납니다. 논문이 타당하려면 배양된 만능세포가 정말 갓 태어난 쥐의 림프구 세포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그렇게 만들어진 세포가 정말 만능성을 갖고 있는지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첫번째 문제를 위해 오보카타는 배양된 만능세포와 쥐의 유전자 분석을 보여주는 전기영동 영상 데이터를 제시합니다. 둘의 디엔에이(DNA) 정보를 비교해 같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그러나 이 사진은 두 장의 별도 영상을 합성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또 만능성을 보여주는 세포의 사진은 그가 2011년 와세다 대학 박사학위 논문 때 실은 다른 세포의 영상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부정과 날조가 있었던 것이죠.
이런 의혹에 대해 오보카타는 뭐라 변명했을까요? 그는 논문에 관한 여러 논란에 대해선 “미숙함에 따른 실수”라며 “스태프 세포를 200번 넘게 만들었다. 스태프 세포는 정말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또 논문 철회에 대해선 “국제적으로 결론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제 논쟁은 오보카타가 주장하는 스태프 세포의 ‘존재 여부’로 옮겨갔습니다. 이과학연구소는 앞으로 1년에 걸쳐 정말 스태프 세포가 존재하는지 검증을 벌여나갈 계획입니다. 이번 기자회견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어땠냐고요? <아사히신문>이 1면에서 꾸짖습니다. “데이터(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의혹이 남는다.” 해명은 눈물과 주장이 아닌 과학적 근거를 통해 하라는 얘깁니다. 여러분, 이해되셨나요?
길윤형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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