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1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되던 세모 사장 시절의 유병언 전 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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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의 질문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린 세월호 참사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깊은 애도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이 가급적 활동을 자제하면서 소비 위축이 두드러진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대형 참사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사태가 경제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겉에 드러난 외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내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에게 안전과 관련해 두 가지 근본 질문을 던졌다. 첫째는 나는 과연 안전한가? 둘째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국가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나를 구해줄 것인가? 불행히도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얻은 답은 모두 ‘아니다’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안긴 내상의 본질은 불안이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불안하면 주머니를 안 연다. 세월호 참사가 몰고 온 불안은 우리 사회의 기본과 원칙의 부재라는 근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안전 관련 법규정의 미비, 그나마 있는 법규정도 안 지키는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 인간의 생명보다 금전적 이득을 앞세우는 천박한 기업윤리,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실종된 선원들의 무책임, 고질적인 민관유착 등은 우리 사회의 가치·의식·제도·행태에 관한 총체적 반성과 재정립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지목받는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일가의 불법 비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의 근원지 중 하나다. 이윤추구를 위해선 불법도 마다않는 기업과 기업인의 행태가 계속되는 한 제2의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유병언 같은 기업인이 더 없는가 하는 점이다. 유씨는 작품성이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한 사진을 계열사에 장당 1000만원 이상씩 고가에 떠넘겼다. 이는 재벌 총수 일가가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유씨 아들 소유의 페이퍼컴퍼니들이 경영컨설팅 등의 명목으로 계열사에서 수백억원을 받아 챙긴 것도 재벌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총수 일가 회사를 거래단계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챙겨주는 것과 유사하다. 유 전 회장은 거액의 돈을 내고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5년 프랑스의 한 스키장을 거액을 주고 통째로 빌렸다가 국제적 망신을 산 일과 닮은꼴이다. 또 유 전 회장은 아무 관계도 없다던 청해진해운으로부터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고문료를 받았다. 배임횡령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어 경영활동을 제대로 못하고도 백억대 거액의 보수를 받은 재벌 총수와 무엇이 다른가? 유 전 회장 일가가 회삿돈을 빼돌려 미국에 여러 채의 호화주택을 갖고 있다는 의혹도 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불법 사례와 판박이다. 세모가 부도났는데도 유 전 회장 일가가 불과 몇년 만에 수천억원대 재산을 축적한 것도, 국민들이 흔히 듣는 “회사는 망해도 총수는 평생을 호의호식한다”는 얘기의 재현이다. 순환출자를 이용한 수십개의 계열사 설립과 문어발식 사업다각화는 재벌 성장사의 복사판이다.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으면서 핵심 측근들을 내세워 실질적으로 경영을 총괄하는 행태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총수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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