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사회정책부에서 노동을 담당하는 김민경입니다. 노동자 권리가 ‘세계 최악’인 나라의 노동자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얼마 전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발표한 ‘세계노동자 권리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사실상 최하인 5등급을 받았거든요. ‘노동권’ 하면 할 말 많은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1주일간 겪은 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삼성 냉장고, 에어컨 등을 고쳐주는 에이에스(AS) 수리 기사들이 지난해 7월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삼성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고 삼성 제품을 수리하지만 이들은 삼성 직원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죠. 월급이 아니라 건당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일이 많은 성수기(6월~8월)와 일이 없는 비수기(9월~다음해 5월)의 임금 차이가 큽니다. 이런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가 만들어졌고, 9개월간 건당수수료를 폐지하고 월급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각 센터 협력사 사장들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권을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교섭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자 노조는 지난달 결렬을 선언하고, 8일부터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경기도 삼성서비스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죠. 서울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12일부터 2박3일 동안 집회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2박3일 ‘상경 투쟁’에 참여해 “5월 총력투쟁 함께하자. 6, 7, 8, 9월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던 염호석(35) 경남 양산센터 분회장이 17일 오후 1시30분께 강릉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라는 유언장과 함께요. 조합원들은 유언을 지키고자 18일 새벽 주검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 빈소에 안치했고, 아버지께 장례 절차를 노조에 위임한다는 위임장도 받았습니다. 뒤이어 장례식장을 찾아온 어머니도 노조에 장례를 맡겼습니다. 교섭이 결렬된 어려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노조 간부의 죽음은 조합원들에게 충격이었죠. 조합원들은 결혼하지 않은 염호석 분회장의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달 월급 41만원이란 박봉과 노조탄압에 힘들어하던 고인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편할 수 없었습니다. 18일 오후 6시15분께 강남경찰서 경찰 240여명이 어떤 설명도 없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쳤습니다. 무릎까지 꿇고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던 조합원들은 주검을 빼앗아 가려는 줄 알고 경찰을 막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날 오전부터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며 마음을 갑자기 바꾼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장례를 둘러싸고 아버지, 어머니, 위임장을 받은 노조의 입장이 서로 달랐는데도 신고를 받고 ‘신속’하게 출동한 경찰은 중재 대신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국 25명을 연행하고 난 8시께 고인의 주검을 실은 구급차는 장례식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아버지의 변심과 경찰의 신속한 진압을 두고 노조는 “삼성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쪽은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날 저녁 부산에 있던 조합원들은 부산의 장례식장을 수소문한 끝에 빈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20일 주검이 빈소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수소문 끝에 12시 경남 밀양 화장터에 도착했을 때는 화장이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조합원을 가로막은 건 경찰이었습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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