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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30 20:10 수정 : 2014.06.06 20:26

친절한 기자들

원대한 꿈은 단 10초 만에 포기되었습니다. 토요판팀 기자들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의 범죄 이력 전수조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후보자 명부 엑셀 파일에서 전과 기록이 없는 후보자를 제외했더니 전체 6818명 가운데 2702명이 집계됐습니다. 어마어마하더군요.

“2702명? 숫자를 잘 못 본 거 아냐?” “아니, 여기 파일 보세요. 3일 만에 어떻게 다 추적해요? 토요판팀 여유 인력이 2, 3명밖에 없는데.” “안 되겠다. 3범 이상으로 좁히자.” “근데 왜 하필 3범 이상이에요?”

그때, 누군가가 의미 부여를 했습니다. “한국인은 삼세번이잖아!”

참 간단하게 정리됐습니다. 후보자들이 이제껏 너무 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왔고, 토요판팀 인력으로서는 이 많은 범죄를 추적할 수 없었으며, 아량을 넓혀 1·2범은 봐 주자는 결론을 내렸고, ‘한국인은 삼세번’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문화적 의미 부여를 어느 기자가 주었던 것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나와 있는 후보자들의 상세 범죄 이력을 정리했습니다. 음주운전과 무면허 운전은 후보자가 되기 위한 ‘기본 스펙’이요, 공직선거법 위반은 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 이력’이더군요. 후보자님들의 박력있는 면모 또한 확인되었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관한 법률(집단, 흉기 등 상해) 위반 등은 이들이 얼마나 ‘확실한 성격’인지 보여주었습니다. 후보자님들이 살아온 인생길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요. 식품위생법, 개항질서법, 도박개장, 사기, 수질환경보전법, 대기환경보전법, 농수산물품질관리법, 폐기물관리법, 의료법, 음란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 위반까지…. 후보자님들은 정치인이 되기 전에 징글징글한 삶의 밑바닥 현장에서 거칠게 살아오셨습니다. 책상머리에나 앉아 유권자들의 삶과 동떨어진 채 성역처럼 고매하게 살아왔던 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범죄를 기록하다 보니 이들이 선거 후보자인지, 아닌지 헷갈렸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은 범죄도 아닌 것 같고,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은 살면서 까짓 몇번쯤 위반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심심해서 ‘혼자 놀기’도 해보았습니다. 관상가는 아니지만, 후보자 얼굴만 보고 범죄를 예상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기록된 정답과 맞히는 거죠. 폭력형과 사기형 얼굴은 확연히 다르더군요.

전과 3범 이상의 후보자님들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치인 후보자답게 언변 또한 청산유수였습니다. 첫번째, 생뚱 결론형. “제가 시민사회 운동을 쉬고 장사를 시작했지요. 직원 관리를 못해서 ‘묵 사건’이 났어요. 국내산과 중국산 묵이 있는데 뒤바꿔 놓은 거야, 직원들이. 아, 그런데 <한겨레>가 여기 지역 새누리당 후보 기사를 써주었더만요. 아, 내가 창간 독자인데 미춰부러~(미치겠네)” 두번째,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분노형. “법인 회사 대표이사로 있다가 납품을 했는데, 아 그게 사기죄가 아니에요. 납품하는 도중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와서 정권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그런 전과가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세번째, 반성형. “음주운전 했어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들도 전과가 많을까요? 사회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모집단을 구성해야겠지만, 아쉬운 대로 토요판팀을 점검해보았습니다. 토요판팀 6명의 기자 가운데 절반이 전과 1범, 나머지 3명은 전과가 없었습니다. 전과 1범은 음주운전 2명과 전 직장 사주 집 앞에서 파업 유인물을 배포하다 걸린 명예훼손이 1명이었습니다.

박유리 토요판팀 기자
“택시비를 아껴보려 음주운전을 하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진짜 정신을 차렸다.” “장인어른도 내가 음주운전 전과자인 걸 알지 못한다. 부끄러운 과거다. 그런데 이거 말한다고 기사에 쓸 것이냐? 제발 쓰지 말아달라.” 이들이 금요일 밤에 술에 취한 채 공덕동과 만리동 고개에서 자주 출몰하기는 하나, 택시를 이용하여 집에 귀가하고 있음을 함께 생활하는 제가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에 ‘개전의 정’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반성을 하고 돌이키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법치주의를 강요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이 법인데, 전과 이력이 화려한 분들께서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러할까요?

박유리 토요판팀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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