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랜만! 잠시 신문을 떠나 1년가량 <한겨레21>에서 근무하다 <한겨레>로 돌아왔더니, 다시 ‘친절한 기자’를 쓸 기회가 생겼어. 한때는 취재원들로부터 “친절한 기자 잘 봤다”는 인사도 많이 들었는데, 이젠 나의 반말투마저 기억 못하는 독자들이 많으실 것 같아. 이건 모든 신문기사가 반말이란 데 착안해서 고안한 나만의 스타일이야. 우리,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기로 해(요). 오늘의 주제는 국무총리야. 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 반 동안의 총리 및 총리 후보자들을 떠올려보자고. 첫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부동산 투기와 아들 병역 등 의혹 속에 낙마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총리가 됐으나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었던 정홍원 총리, 거액 수임료 및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 속에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 그리고 역사 인식을 둘러싼 홍역을 치르고 있는 문창극 후보자까지. 이 4명이 후보자로 지명되거나 낙마할 때마다 온 사회가 시끄러웠어. 잘했네 못했네, 자격이 있네 없네, 잘났네 못났네…. 도대체 뭔가 싶어 머리를 싸매다 보니, 한숨과 함께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돼. 총리가 뭐길래 우리가 이러는 거지? 총리는 다른 말로 수상(首相)이라고도 하지. ‘으뜸 재상’, 요즘 말로는 ‘으뜸 장관’의 줄임말이고, 영어 표현(prime minister)과도 상통해. 장관들 가운데 우두머리라는 뜻이지. 하지만 한국에선 총리가 전체 행정부의 수장이라 할 순 없어. 우린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대통령제 국가잖아. 사실 한국의 총리 제도는 독특한 편이야. 대표적인 대통령제인 미국엔 총리란 직책이 아예 없어. 2인자인 부통령은 선거에서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고, 상원 의장도 겸직하지. 반면, 의원내각제인 영국·일본에선 총리가 실제 행정부의 수반을 맡게 돼. 의회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는데, 대표(당수)가 총리를 맡으니까. 미국식도 영국·일본식도 아닌 한국 정치에서의 총리는 위상도 권한도 좀 애매해.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한 뒤 국회로부터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정통성을 대통령과 국회 양쪽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도 볼 수 있어. 하지만 파리 목숨이야. 헌법상 대통령이 총리 해임 권한을 갖고 있거든. 의회가 ‘불신임’을 결정해야만 해임이 가능한 이원정부제와는 다르지. 대통령과 국회가 합심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총리를, 대통령이 마음대로 자를 수 있다니, 이게 뭐냐고. 총리 권력의 바탕이 이 모양이니, 실질적인 권한도 엉성해. 대표적 권한인 내각통할권도 그래. 헌법은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꼭두각시라는 건지, 아니면 대통령 사인만 받으면 된다는 건지 모호해. 그러니 ‘큰 청와대’일 때 총리는 늘 유명무실할 수밖에. 국무위원(장관) 임명제청권도 그래. 대통령은 조각권을 갖지만, 총리는 임명제청권을 갖고 있어. 총리가 권한을 온전히 행사한다면, 대통령은 총리의 추천을 최종 결재만 하는 거야. 어느 대통령이 그걸 바라겠어. 대개 총리는 형식상 이름만 빌려주고, 실제론 대통령이 다 했지.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총리가 후보자 3배수를 추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른바 ‘책임총리’ 실현을 공약했는데, 실제론 거의 인사 때마다 총리와 장관 인선이 동시에 진행돼 그럴 겨를도 없었어. 총리의 권한에 우리가 주목하는 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야.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 및 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이 대두될 때마다 늘 ‘권력 분산’이 화두가 됐지. 총리의 권한을 늘리자는 건데,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총리제도 같은 취지였어.
김외현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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