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요즘, 자꾸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껴요. 철도시설공단 때문이에요. 저는 지난 21일 철피아의 실체를 추적하고, 공단 퇴직 간부 이직 현황과 수주율 간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한 ‘철피아의 레일’을 보도했어요. 민관이 결탁해 봐주기식 관리·감독을 일삼다가 수백명이 숨진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관피아와 철도 안전 문제를 점검하자는 취지였지요. 철도시설공단의 반응은 남달랐어요. 공단은 22일 대서사시를 방불케 하는 16쪽짜리 해명자료를 배포하며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또는 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어요. ‘사실을 왜곡’(2회), ‘사실과 다름’(2회), ‘오보’(1회), ‘사업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1회)이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지난달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하고, 일부 간부와 김광재 전 이사장이 민관 유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 공단은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제가 쓴 기사를 ‘꼼꼼하게’ 다시 봤지요. 사실을 왜곡하거나 오보를 낸 부분이 없었어요. “언제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느냐?”고 이번주 서너 번 질문해도 정확한 답을 안 줘요. 공단의 해명자료를 점검해 봤지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한 부분이 많았어요. 공단의 해명자료에 9가지 반박과 질문을 덧붙여 23쪽짜리 문서를 만들었어요. 제가 ‘쬐끔’ 집요하거든요. 저를 만나러 대전에서 서울로 오겠다던 공단은 해명자료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답할 이유가 없다”고 해요. 이메일로 23쪽짜리 문서를 보냈더니 “취재에 응할 수 없으며 필요하실 경우 공식적인 문서로 요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요. “공문을 보내면 답해 주느냐?”고 물으니 “검토를 해봐야 안다”고 아리송한 말을 해요. 심지어 “기자님을 신뢰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네요. 제게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겁을 주더니 자신들의 해명자료가 진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검증을 거부하고 침묵하는 거예요? 2013년 사업비 집행 규모만 11조1296억원으로 국민의 철도 안전을 책임진 공공기관이 이러면 안 되죠. 제가 공단에 보낸 23쪽 자료의 일부만 공개할게요. 공단은 “독일 궤도 전문가 위르겐 볼프 박사 자문 등과 관련하여. 한겨레 보도는 볼프 박사의 사전제작형 콘크리트 궤도(PST) A형 자문을 마치 PST B형인 것으로 혼동한 오보임”이라고 해명자료에 썼어요. 그런데 볼프 박사는 보고서에서 사전제작형 콘크리트 궤도 A형과 B형을 모두 분석하고 “균열이 발생했다”고 밝혔거든요. 그런데도 공단은 사전제작형 콘크리트 궤도 B형을 망미터널에 부설했고 코레일(철도공사)이 균열 342곳을 발견했어요. 공단이 볼프 박사의 자문 보고서를 읽기는 하고 해명자료를 쓴 것인지 걱정이 되었어요. 친절하게 볼프 박사의 보고서를 공단에 보내줬지요. 읽어보라고요. 또 공단은 수치를 자신들의 논리에 꿰맞추었어요. “한겨레가 지목한 ㄷ건설사는 07년 이후 공단의 발주사업 1057건 중 12건(4.8%) 낙찰받은 반면 (공단 퇴직자가 재취업하지 않은) ㅅ건설사는 24건 수주했다.” 공단이 해명자료에 쓴 내용이에요. 공단 퇴직자가 없는 ㅅ건설사와 공단 퇴직자가 재취업한 ㄷ건설사의 수주 건수를 비교하며, 재취업자 영입 여부와 수주는 상관없다고 주장한 거예요. 그런데 공단은 수주 금액은 무시하고 왜 수주 건수로만 분석했을까요? 해명자료에 적힌 대형 건설사 연도별 수주 현황(07~14년)을 보면 공단 퇴직자가 없는 ㅅ건설사는 17개 건설사 가운데 수주금액 6694억으로 수주 점유율 8위, 공단 퇴직자가 재취업한 ㄷ건설사는 수주금액 1조2989억으로 점유율 1위예요. 수주 건수만으로 실적을 비교하는 게 합리적인가요?
박유리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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