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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2 13:49 수정 : 2018.12.22 15:01

[토요판] 커버스토리
영국 외 다른 나라들에서도
유럽연합에 대한 불만 커져가
‘전쟁종식’ ‘경제번영’ 내세웠던
유럽통합 이상, 큰 도전에 직면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마크롱 퇴진’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는 지난달 17일 시작돼 프랑스 전역으로 번졌으며 한달 만에 누적 인원 70만명을 넘겼다. 파리/AFP 연합뉴스
“오늘날 유럽은 같은 꿈을 꾸는 공동체가 아니다. 고쳐 쓸 수 없을 정도로 시장주의에 찌들었다. 해체만이 답이다.”(코스타스 라파비차스 소아스대 교수)

지난 9월21일 영국 런던에 있는 소아스(SOAS)대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의 미래’라는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분열 양상에 빠진 유럽의 현주소를 짚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으나 속 시원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당원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라파비차스 교수만큼 ‘과격’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참석자들도 유럽연합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이너 플라스베크 전 독일 재무부 차관은 “유럽 위기는 구조적으로 끝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엥겔베르트 슈토크하머 킹스칼리지대 교수는 “유럽 내 무역불균형이 심화되고 민간 부채가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더욱 강한 금융 규제와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정책에 힘을 쏟으면 유럽 위기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 탈퇴 도미노로 이어질까. 유럽통합에 대한 불만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끓어오르고 있다. 각국의 주류 정당은 물론 학계에서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합에 경고등이 켜진 건 오래되지 않았다. 체코·슬로베니아·헝가리(이상 2004년)·루마니아(2007년) 등 경제 취약국이 2000년 이후 유럽연합에 대거 가입한 뒤 나타난 이민 행렬과 2015년 ‘난민 위기’ 때 시리아·이라크 등 분쟁국에서 유입된 대량 난민이 균열을 부채질했다. 서·북유럽 부국에서 극우정당들이 2000년대 들어 갑자기 세력을 키운 핵심 동력은 넓게 형성된 ‘반이민 정서’다. ‘자유로운 이주’나 ‘보편인권의 확장’은 마스트리흐트 조약(1993년 발효)에 담긴 유럽연합의 핵심 정책이며 가치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에 오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이민 제한에서 한발 나아가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공약했다. 프렉시트 요구는 최근 ‘노란 조끼’ 운동에서도 등장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스웨덴의 ‘스웨덴민주당’은 ‘이민 제한’을 내세웠다. 2004년 창당 뒤 10여년 만에 원내 2당에 올라선 네덜란드 ‘자유당’(PVV)도 이민 확대와 유럽 통합에 매우 부정적이다.

남유럽에선 경제적 불평등이 좀 더 부각되며 좌파 정당들이 유럽연합 질서에 반기를 든다.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보다 한 해 앞서 치러진 2015년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은 ‘유럽연합 해체’를 주장하는 남유럽의 대표적 좌파 정당이다. 2004년 창당 이후 불과 11년 만에 집권당이 됐다. 스페인(포데모스)·이탈리아(오성운동)도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좌파 정당들이 연합정부(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경제난의 뿌리가 ‘무역 불균형’을 낳는 단일 통화(유로·Euro) 체제에 있다고 본다.

‘토니 블레어 재단’ 집계를 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18년간 유럽 통합에 도전하는 정당은 33곳에서 63곳으로, 집권하거나 연합정부에 참여한 정당은 7곳에서 14곳으로 두배 급증했다. 이 재단의 마틴 이어만 연구원은 “유럽 정치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전쟁 종식’과 ‘경제 번영’이라는 유럽인의 꿈을 담고 출발했다. 1949년 9월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는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2차 세계대전 뒤 폐허가 된 유럽의 현실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럽에 연합 국가를 건설해야만 한다. 1억명에 이르는 고통에 빠진 유럽인이 생활의 기쁨과 가치 있는 삶을 다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유럽연합 탄생에 시동을 건 첫 연설로 꼽힌다. 1952년 발족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시작으로 오늘날 유럽은 하나의 국가에 견줄 수준으로 경제와 정치의 통합을 이뤄냈다. 하지만 유럽이 꾸었던 꿈은 통합의 역사 60여년 만에 빛이 바래고 있다. 런던/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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