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0 10:20
수정 : 2019.04.20 10:22
[토요판] 커버스토리
‘변시낭인’ 막는다며 5년 응시제한
임신, 출산, 중대질병도 예외 안돼
여가부·권익위 “규정 개정을” 권고
법무부 “임신 빼고 출산 1회만 추가”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논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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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은 변호사시험을 5년 내 5회만 응시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병역의무를 제외하고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중대 질병 등으로 변호사시험을 치르기 힘든 상황에서도 로스쿨 졸업생들은 수험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사진은 제5회 변호사시험이 시행된 2016년 1월 서울 중앙대학교 시험실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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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제외한 출산만 1회에 한해 예외 사유로 추가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출산만 고려하게 되면 형평성 문제가 있으므로 중대한 질병·사고 등 시험에 응시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사정에 대해서도 5년·5회 응시제한 예외 사유를 확대하는 방안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임신은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출산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법무부 의견대로 출산 횟수에 상관없이 1회 응시 기회를 추가 부여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중대한 질병·사고는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으니까 일단 출산의 경우에만 1회 더 부여하는 걸로 하자.”(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실에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뒤 5년 내 5회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변호사시험법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있었다. 현행법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만 예외로 인정한다. ‘5년·5회 응시 규정’의 예외 사유를 출산 1회에 한정해야 한다는 법사위 소위원회 회의 내용이 알려지자, 로스쿨 졸업생 4명이 오는 22일 이들 의원에게 공개 항의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한겨레>가 그 편지를 입수했다.
법사위 의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지방의 한 로스쿨 졸업자인 ㄱ씨는 2016년 여름 무렵 이듬해 1월 치러질 변호사시험에 응시(세번째)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임신 중(10월 출산 예정)이었던 ㄱ씨에게 조기 진통이 찾아왔다. 그는 밥을 먹거나 화장실 가는 것을 빼고는 누워서 지내는 ‘절대안정’을 6주간 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분만 뒤 과다출혈로 산모가 위급한 상황이 됐다. 수술을 받아 몸은 회복했지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한동안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ㄱ씨는 2017년 1월, 2018년 1월 두차례의 시험 기회를 놓쳤다. 지난해 17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 ㄱ씨는 지난 1월 마지막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ㄱ씨는 항의 서한에 이렇게 썼다. “유산한 경우 임신은 했지만 출산은 하지 않았으니 제한 규정을 적용받는 게 당연한가. 결혼하고 자녀 계획을 세웠지만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당연한가.”
로스쿨에 다니던 ㄴ씨는 2015년 5월 암이 발견됐다. 수술을 받고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데다 스트레스가 심해 연거푸 변호사시험에 떨어졌다. 치료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대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마저 겹쳐 그는 마지막 시험 응시 기회까지 다 써버린 상태다. ㄴ씨는 물었다. “투병과 수험을 병행한 내가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 1회를 더 얻는다고 그것이 국가적 낭비이고 사회적 위해가 발생하는 것인가.”
로스쿨 졸업자 ㄷ씨는 두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또 키우면서 ‘오탈자’가 됐다. 두번은 아예 시험장에 들어가보지도 못했고 한번은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시험을 치렀다. 기막히게도 같은 시험장에 출산예정자가 또 있었다. “그도 수시로 오는 통증에 계속 앉아 있지도 못하면서 시험을 치더라. 일분일초가 아쉬운 시험장에서 괴롭게 버티는 모습을 보며 응시제한 제도가 없어도 우리(출산예정자)가 하루 7시간씩 4박5일간 이 시험을 ‘지금 굳이’ 치르고 있을까 싶더라.”
한편 금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법사위 소위 전체적인 분위기가) 응시제한 예외 규정을 확대하는 데 부정적이라서 출산이라도, 1회라도 연장하자는 취지로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여러번 출산해도 1년만 늘려준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해마다 낮아지면서 시험에 낙방한 ‘변시(변호사시험) 낭인’이 늘고, 그에 따라 오탈자도 속출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까지 441명이 오탈자가 돼 법조인이 될 기회를 잃었다고 밝혔다.
2016년 7월 한 로스쿨생이 ‘5년·5회 응시제한’은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그해 9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오탈자에게 다시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준다면 장기간 시험 준비로 인한 인력 낭비를 방지한다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임신·출산으로 오탈자가 된 이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가족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이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고, 법무부도 지난해 11월 출산 1회(임신은 제외)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주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ㄷ씨 등은 지난해 8월 다시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법무부가 출산을 예외로 인정하기로 하면서 응시제한으로 중요한 기본권 침해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됐다. 하지만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 극심한 생계 곤란 등으로 공부를 쉴 수밖에 없는 이들을 구제할 방법은 여전히 없다. 이 규정 자체가 위헌이므로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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