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3일 새벽 6시 무렵 경북 울진 남수산 정상부터 북쪽 방향으로 길이 약 500m가량이 한순간에 내려앉았다. 주능선을 따라 동쪽 사면 곳곳에는 땅이 갈라지거나 꺼진 곳이 여럿 있다. 심하게 지반이 무너진 곳은 지층이 양쪽으로 벌어져서 마치 협곡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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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울진 남수산 지반침하 현장
▶ 갑자기 땅이 찢어지고 산이 내려앉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마치 외신에서나 보던 대형 지진 현장과도 같은 지반침하가 경북 울진 남수산에서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처음 관찰된 이 믿기지 않는 사태는 30여년간 70여만t의 석회석을 채굴하며 산 밑을 파먹은 광산이 초래했습니다. 한진그룹이 광업권을 가진 광산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법과 행정당국의 안일한 대응 탓에 산 밑에서 살아온 주민 250여명은 비만 오면 산사태를 걱정하며 난민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비만 오면 집을 떠나는 난민들이 있다. 산사태 위험 때문이다. 무분별한 광산 개발로 지반침하가 발생해 산이 반 토막 났다. 경북 울진군 매화면 남수산(437.7m) 일대다. 처음 산이 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23일 새벽 6시께.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심한 진동과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남수산 정상부터 북쪽으로 지반이 내려앉았다. 남수산 아래의 매화면 주민들은 물론이고 울진읍의 주민들까지도 알아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산 500여m가 협곡처럼 주저앉아
현장 모습은 충격적이다. 남수산 정상부터 북쪽 방향으로 길이 약 500m가량의 산지 지반이 내려앉았다. 지반침하 현상은 해발 330m의 능선지역부터 동쪽 사면의 해발 200m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폭 1~15m, 높이 2~20m가량 지층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지반이 벌어진 곳 중에서는 깊이 20m 이상 지하동공으로 연결된 곳도 있다. 또한 남수산 정상부터 북쪽 능선과 동쪽의 산지 사면이 갈라지거나 붕괴가 이어지고 있다. 심하게 지반이 무너진 곳은 지층이 양쪽으로 벌어져서 마치 협곡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능선을 따라 동쪽 사면 곳곳에 땅이 갈라지거나 꺼진 곳도 더 있다. 길이 2~20m, 폭 10~50㎝가량 산지 사면이 벌어지면서 갈라지고 있는 곳도 10개소 이상이다. 추가로 지반침하 우려가 있는 장소이다.
지반침하 현장 곳곳에는 40~50년생 전후의 소나무 수백 그루가 뿌리째 쓰러져 있거나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다. 토층이 침하된 지층 주변에 너덜너덜 붙어 있는 모습이 처참할 지경이다. 돌과 바위가 곳곳에 박혀 있거나 돌출되어 있는 곳도 다반사다. 소형 승용차 크기부터 대형 냉장고 크기만한 석회석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비가 오면 토석류와 산사태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사고 발생 이후 지금까지 3개월 가까이 주민들은 매일매일 지반침하 현장을 순찰하고 있다. 추가 붕괴 및 또 다른 징후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곳곳에 빙하의 크레바스처럼 지층이 완전히 갈라진 곳이 있어, 공포감을 느끼면서 조심조심 다녀야 한다. 무너진 지반의 규모가 상당하므로 침하된 띠를 따라가다 보면 ‘추가로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교차된다. 그사이 지역주민들은 물론, 관계기관의 공무원이나 전문가 등 수십명이 현장을 다녀갔다. 모두들 한결같은 반응은 ‘이런 곳은 처음 본다’였다.
보통 석회석 지대에서 자연현상으로 동공처럼 땅이 꺼지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다. 또는 석회석 광산 개발로 함몰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싱크홀처럼 원형으로 내려앉은 데 반해, 남수산처럼 산이 반 토막 나는 경우는 없었다. 국내에서 근대적인 지형지질 기록이 시작된 이래, 이런 곳은 자연현상이든, 인재로 인한 것이든 처음으로 보인다. 땅이 찢어지듯이 수백m 꺼지고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광산개발로 갱도가 무너지거나 지반이 꺼지는 사고는 여러 차례 많이 있었지만, 산 전체가 내려앉은 것은 처음이다. 한마디로 외신에서나 보던 초대형 지진과 같은 현장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대는 한진그룹 소유의 광산으로, 지난 30년간 70여만t의 석회석이 채굴됐다. 한진그룹 산하 한국공항이 광업권을 가지고 주로 포스코의 제철소로 납품하는 석회석을 채굴하는 광산이었다. 남수산 지하로 실핏줄처럼 파들어가던 갱도가 무너지면서, 산지 전체의 균열로 이어져 지반침하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진그룹 쪽은 “광산보안법에 의한 조사가 진행되어 원인이 밝혀져야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가 광업권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직접 광산개발을 한 것은 조광권자다. 가려서 봐야 한다”며 1차적 책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지진난 듯 무너진 울진 남수산소나무 수백그루 뿌리째 뽑히고
빙하 크레바스처럼 지층 쪼개져
아래쪽엔 130여가구 모여살아
주민들 매일 순찰 돌며 속앓이 한진그룹 소유 광산 석회석 채굴
포스코 제철소로 주로 납품
한진 “조광권자가 개발” 뒷짐
2007년 함몰 조짐에도 방치
일제 때 법규 토대로 안전 소홀 “난리 난리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지반침하가 발생한 남수산 아래쪽에는 130여가구 2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울진 매화면 매화2리, 금매2리 등이다. 이번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남수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던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었다. 하지만 평화롭던 마을은 한순간에 재앙의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주민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다. 주민들은 3개월째 ‘추가 붕괴 또는 산사태’ 등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사고가 난 2월23일 이후 비가 올 때마다 ‘대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한시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매화2리 주민 금종훈씨는 “난리 난리 이런 난리는 처음이다.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 수백년간 화목하게 살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재난을 안고 사는 마을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아가는 마을이다. 집집마다 대문도 없을 정도로 평온하던 곳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인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주민들을 화나게 만드는 또다른 요인은 당국의 더딘 움직임이다. 사고 이후 울진군청에는 ‘산사태위험대책상황실’이 꾸려졌다. 추가적인 붕괴나 산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민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항구적인 대책은 손조차 못 쓰고 있는 상황이다. 광산에 대한 일체의 관리 및 감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산자부는 광산보안법을 근거로 들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산자부 자원개발과 최병권 사무관은 “우리도 심각하다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비만 오면 울진 남수산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광산보안법 규정 자체가 정밀안전조사를 통해서 광산의 폐쇄나 복구 명령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정밀안전진단조사는 5월초부터 시작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주관하며 강원대 최성웅 교수, 경북대 유인창 교수, 상지대 황영철 교수, 서울대 전석원 교수, 청주대 김종우 교수 등의 지하자원 개발 및 지질 분야 전문가 10여명이 조사에 들어갔다. 이 중 경북대 유인창 교수를 비롯한 6명은 위험지역 주민들이 추천한 전문가다. 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송권경 박사는 “이번 지반침하는 이례적이라 정밀한 조사를 통해 원인 규명과 복구 대책의 방향까지 제시할 것이다. 사계절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년 4월이 되면 결론이 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산사태 분야는 시급성을 다투기 때문에 6월말까지 1차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서둘러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는 데는 소관 업무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점도 한몫했다. 안전대책은 국민안전처 소관이지만, 광산에서 벌어진 일이라 실행 업무는 산자부가 나서야 하고, 실제 현장을 담당하는 건 울진군청과 경상북도다. 국민안전처 자연재난대응과 이상권 과장은 “심각한 상황이다. 산자부와 계속 협의를 하고 있다. 다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당사자는 한국공항 쪽이고, 관리감독은 산자부에서 하기 때문에 국민안전처가 할 수 있는 수단도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울진석회광산반대범대책추진위원회 장영철 위원장의 말 속에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무엇보다 항구적인 안전대책이 시급하다. 비만 오면 대피하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이주를 포함하여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인도 총선 전에는 방문하더니, 선거 끝나고는 말이 없다. 그저 우리는 농사짓고 살고 싶다. 정부가 신속히 광산을 영구히 폐쇄시키고,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대책은 ‘비 오면 피하라’ 울진 남수산에서 발생한 지반침하는 명백한 인재다. 한진그룹 소유 광산이 지하를 대책 없이 파헤치다가 어느 날 갱도가 무너지면서 바로 위의 산이 주저앉은 것이다. 더군다나 2007년 이미 남수산 일대에서는 지반침하 및 함몰 등의 조짐이 나타난 적이 있다. 당시 산 중턱 일부가 내려앉아 땅에 구멍이 생기고 분묘가 훼손됐다. 산자부, 한국광해관리공단 등이 조사를 벌였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9년 이상 방치했다. 그때 산자부가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고, 한진그룹의 광업권을 중지시켰으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광산의 환경 및 안전에 관한 내용은 광업법을 모법으로 삼는 광산보안법에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를 수탈하던 대표적인 법규가 광업법이고,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듬어진 것이 광산보안법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자원개발을 독려하던 시대적 분위기와 정부 정책으로 인해 광산보안법은 환경이나 안전보다는 광업의 진흥을 우선시했다. 그 탓에 광산으로 인해 인근 지역에 피해가 발생해도, 원인 규명과 피해 보상이 상당히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울진 한진그룹 광산의 경우처럼 산이 반 토막 날 정도의 지반침하로 주민들이 공포 속에 살아가는데도, 신속한 조처가 따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광업법 및 광산보안법 때문이다. 재해는 법규를 따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위험은 방치하면 물리적 작용에 의해 꿈틀거리고 활개친다. 기다리지 말고 선수를 치는 것이 안전의 기본이다. 그러나 울진 지반침하 현장은 그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안전은 위험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울진 남수산 지반침하 현장으로부터 아래쪽 800m 거리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언제까지 이들은 ‘비가 오면 피하라’는 정부의 이야기만 듣고 있어야 할까.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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