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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30 20:30 수정 : 2012.11.20 09:53

별별스타 올림픽 대표 김태환
요르단전 동점골로 수훈
“골문 앞 침착함 키울 것”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강단있어 보였다. 전날 밤 경남 창원에서 컵대회 8강전을 치르고 새벽에 올라와 잠을 설쳤다고 했다. 기운이 없을 법도 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김태환(22·FC서울)은 요즘 “공 차는 맛이 난다”고 했다. 올림픽대표팀의 새 ‘구세주’로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이다. 6월19일 열린 요르단과의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예선 1차전은 독무대였다. 이날 0-1로 끌려가던 후반 동점골을 넣은 뒤 역전골의 발판이 되는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2010년 프로 데뷔 이후 처음 맛본 골이었다. 이튿날 신문엔 “‘대타’ 김태환이 홍명보를 구했다”고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좀 얼떨떨했죠. 식당에 가면 알아봐주는 사람들도 있고요.”

언제부터 따라붙은 대타란 수식어가 목에 가시였다. 소속팀 FC서울에선 최태욱과 고요한에게 밀려 주로 후반 교체 멤버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올해 3월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마찬가지. 당시 조광래 감독은 “이청용의 후반 교체 요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며 발탁했다. 요르단전에서도 대타였다. 원래 김보경(세레소 오사카)과 조영철(니가타)의 백업요원으로 뽑혔다. 그러나 김보경과 조영철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자리를 꿰찼고 결과는 대성공. “아무래도 더 집중하고 많이 뛰려고 하죠. ‘대신 나가서 시합을 망쳤구나’란 소리를 들어선 안 되잖아요.”

명문 금호고 출신인 그는 학창시절 천재라기보다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새벽에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나와 운동을 하곤 했어요. 체력과 스피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늘 주문을 했죠.” 이런 노력으로 고교 때 이미 100m를 11초에 주파했다. 최용수 FC서울 감독도 “스피드는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눈 한번 팔지 않던 김태환에게 위기가 온 것은 고교 2학년 때. 사춘기 속에 축구가 아무 이유 없이 싫어졌고, 숙소를 뛰쳐나와 방황하다가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버지를 비롯해 저를 믿고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이듬해 추계고교선수권대회에서 팀 우승과 함께 득점왕에 올라 ‘눈물의 속죄’를 했다. 김태환의 아버지 김웅정(50)씨의 아들 사랑은 축구판에서 유명하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후원회를 결성했다. 30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FC서울이 광주 원정을 갈 때면 400명 정도가 경기장을 찾는다.

팀 선배인 최태욱을 좋아한다고 한다. “빠르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게 이유다. 골문 앞에서 침착하고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주문처럼 외운다. 목표는 “대타 꼬리표를 떼고 어느 팀에서나 주전을 꿰차는 것”이라고 했다. “당당한 주전으로 런던올림픽에 가고 싶어요. 한번 지켜봐 주세요.”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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