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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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규 명확하면 될까, 시민 감시도 필요할까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우리 사회의 뇌물은 뿌리 뽑기 어렵다. 축의금과 부의금, 행사 찬조금 등으로 일상에서도 서로 돈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뇌물인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현재의 형법에서는 돈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무원의 업무와 관련된 혜택을 노리고 돈을 주었음을 입증해야만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떡값’, ‘촌지’를 막기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금품 수수를 적발해내도, 대가성이 없었다며 잡아떼면 그만인 탓이다. 완화된 처벌 규정에 여론 들끓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법에 따르면, 100만원 이상의 돈을 받은 공무원은 무조건 처벌할 수 있다. 공무원과 관련된 금품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벌의 수준이 지나치게 과하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 법안에서의 처벌은 ‘금품을 받은 자는 과태료(받은 금품의 5배 이하)를 부과’하는 것으로 완화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상황은 총리가 나서서 조정안을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정안에 따르면, 법안에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직무를 통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한다’는 문구가 추가된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 사설은 모두 반대 입장이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관료조직은 이익집단화하는 경향이 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은 관료집단끼리의 힘겨루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법무부는 행정부를 대변하며,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관직 사회의 부패 고리를 끊는 역할을 맡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움직임에 맞서는 모양새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두 신문, 총리 조정안도 부실 질타 중앙과 한겨레 사설은 둘 다 총리 조정안의 부실함을 꼬집는다. 중앙은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수수’ 부분이 지나치게 애매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제점을 짚어낸다. 한겨레 또한 “‘직무 관련성’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다 ‘사실상의 영향력’이란 표현도 애매해 결국 법원으로 해석의 책임을 떠넘긴 인상이 짙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관료조직은 법과 예산에 따라 움직인다. 투명한 행정을 위해서는 법과 예산 규정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총리의 조정안은 되레 뇌물 처벌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해질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두 신문의 사설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사실,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경조사의 축의금이나 부조금 등으로, 상대방이 뇌물 성격이 짙지만 거절하기도 곤란한 금품을 내놓는다 해보자. 이럴 때 김영란법은, “마음은 알지만, 이러저러한 법이 있어서 받기 어렵습니다”라며 정중하게 돌려보낼 명분을 준다. 그럼에도 관련부처에서 김영란법의 도입을 굳이 반대하는 까닭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막스 베버의 주장대로, 관료조직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해법은 다르지만 ‘공기’ 역할 충실 언론은 부패와 부정을 막는 사회의 공기(公器)다. 이 점에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충직하게 자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대목에서 두 사설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중앙은 ‘법률의 생명은 명확성’에 있음을 강조한다. 김영란법을 원안대로 도입하되, ‘수수액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등, 법의 잣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법 규준의 엄밀함을 강조하는 법치주의 정신으로 공직 부패를 청산해나가자는 취지로 읽힌다. 반면 한겨레는 김영란법을 원안대로 도입하되, ‘받은 돈이 직무와 무관한 다른 이유에 따른 것이었음을 공직자가 명백히 입증할 경우 면책되도록 한다’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자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활동을 공개하고 평가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 점에서 한겨레 사설에서는 ‘시민들의 참여와 행정 감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음이 느껴진다. 언론사마다 제각각 다양한 목소리들을 내는 사회는 건강하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채롭고 풍부한 해법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을 함께 읽어 보는 것은 유익하다. 다양한 주장들 속에서 한쪽이 놓친 부분을 다른 한쪽으로 보완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은 공직자가 100만원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았을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민간 부분에 있다 고위 공직자로 임용되는 경우에는, 직전 2년 동안의 활동을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은 현재, 발의자의 이름을 따서 ‘김영란법’으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헌법 제37조 2항에 적혀 있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과잉입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을 받았을 때만 처벌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비판만 받았다. 그러자 국민권익위원회와 법무부는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금품을 받은 자는 과태료(받은 금품의 5배 이하)를 부과하는 것으로 처벌을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일,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직무를 통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국무조정실은 수정안이 ‘김영란법의 원안과 권익위 및 법무부의 합의안 사이의 절충점을 총리가 찾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수정된 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 한다. 하지만 수정안에 대한 반발여론은 여전히 거세다.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을 경우,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를 없애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추천 도서]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 지도자 선출 외
막스 베버 지음, 이남석 옮김, 책세상 관료제
루트비히 폰 미제스 지음, 황수연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막스 베버에 따르면, 관료조직은 끊임없이 이익집단화하는 경향이 있다. 관료조직을 견제하는 임무는 의회와 정치가들에게 있다. 의회는 법률 제정을 통해서, 정치가들은 임명직 관료에 대한 인사권을 통해 관료조직을 단속한다. 미제스에 따르면, 관료조직의 목적은 이익을 목표로 하는 회사와 다르다. 관료들은 주어진 법규와 규칙에 따라 행정을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관료제 아래서 성과에 대한 책임은 공무원들에게 있지 않다. 책임은 관련 법규를 만든 정치가와 정책 입안자의 몫이다. 관료제를 다룬 이 두 권은 관료조직은 민주주의 사회를 이끄는 ‘도구’일 뿐임을 일러준다. 나아가 관료제는 부패하기 쉬우며 건강한 정부조직을 꾸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참여가 중요함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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