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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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대 논리]
중앙 “정확한 진상부터 파악”…한겨레 “환수 적극 나서야” 단계 1 공통 주제의 의미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약탈을 통해 한반도로부터 반출해간 문화재 목록을 작성하고도 이를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때 일본 쪽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소송을 벌여온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은 7월25일에 열린 2심 판결문을 누리집(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3년 일본 정부는 한반도로부터 가져가 보관한 서적들을 전문가를 시켜 조사한 뒤 ‘희소본’에 표시를 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대일 협상에서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때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도 한국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며 목록의 비공개를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외무성이 지난해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목록의) 입수와 유래 경위,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나와 있고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에 공개하지 않은 부분도 다수 포함돼 있어 공개하면 한국이 반환 재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외무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2012년 1심 때 공개하라고 결정했던 일본 문서 중 48건도 비공개로 바꾸었다. 일본 시민단체의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 요구에 대해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비공개를 요청한 일본 외무성의 요구에 재판부인 도쿄고등법원이 비공개 결정으로 화답한 셈이다. 한편 일본이 한반도에서 반출해 간 문화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들로 꼽히는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받기 위한 소송이 곧 시작된다. 조선왕조의궤 등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 운동을 벌여온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스님은 “오구라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 8월1일 문화재 소장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조정 신청서’를 발송한 뒤 8월20일까지 회신이 없을 경우 정식으로 일본 법원에 제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계 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중앙의 사설은 도쿄고등법원 판결문이 난 시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한겨레의 사설은 혜문 스님의 문화재 반환 소송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앙은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인 오노 게이치가 도쿄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인용한다.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돼 있다.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한국 정부에 자신들이 불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일본 정부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중앙은 ‘반출 경위가 공개될 경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일본 외무성의 진술서를 소개한다. 진술서는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불법적으로 강탈한 문화재가 있어 일본에 대한 한국의 여론이 나빠질 것이 두려우니 문서 공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 정부 쪽의 입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마찰뿐일까? 그들이 정작 아까워하고 있는 것은 돌려주어야 할 한국의 귀중한 문화재가 아닐까. 중앙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반환 요구에 대비해 광범위한 목록을 작성했고, 그중 희소가치가 작은 일부 문화재만 돌려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약탈 문화재 보유 목록을 축소했으며, 희소가치가 작은 문화재, 쉽게 말해 소장가치가 없는 문화재를 한국에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1431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지만 그중에는 짚신·돈가방·막도장 등 문화재로서 실속이 없는 물품들이 많았다. 일본은 한국에 돌려주었다는 생색만 낸 셈이다. 중앙의 사설이 일본 도쿄고등법원 판결문과 외무성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어조로 서술되어 있다면 한겨레의 사설은 다소 감정적인 어조로 진술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겨레의 사설에 나타난 감정적 태도는 ‘명성황후 살해’와 ‘문화재 반출’이라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겨레는 ‘오구라 컬렉션’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이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에서 수집한 12각상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조선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문화재까지 노략질해 갔으니 통한의 역사가 피범벅 돼 있는 물품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의 문화재 반출은 ‘노략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어조는 감정적이라기보다 직정적(直情的)이다. 일본 정부가 우리 문화재를 ‘몰래 감추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표현은 감정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에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마치 도둑이 내가 뭘 훔쳤는지 들통나면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니 밝힐 수 없다고 말하는 거나 진배없다’라는 한겨레 사설의 표현도 역시 사실의 차원에서 해석되고 고려돼야 할 문제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그 내용이 아니겠는가. 단계 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과 한겨레 모두 일본 정부와 법원이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1965년 ‘한일협정’ 당시의 문서를 전면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반출해 간 한국 문화재의 전체 목록과 경위를 한국에서 알게 되면 한국이 당연히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중앙은 이런 사실이 드러난 만큼 한국의 정부가 ‘정확한 진상부터 파악해 일본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본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라며 중앙은 환수 문제의 해결이 한-일 관계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어조는 중립적이다. 한겨레 사설의 어조는 사뭇 단호하고 직정적이다. 특히 일본의 ‘문서에는 한국 문화재 입수 경위, 목록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다 나와 있으므로 ‘강탈 문화재’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기록의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이를 돌려받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직정적 어조로 말하고 있다. 중앙의 객관적인 어조, 한겨레의 직정적인 어조, 두 사설에 나타난 발화(發話)의 표면은 다르지만 그 발화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같다.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반출해 간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것이다. [키워드로 보는 사설]
오구라 컬렉션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인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 1964)가 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역에서 수집한 유물 1100여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대구에서 전기회사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1921년부터는 한반도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그는 수집한 유물들을 밀항선에 싣고 일본으로 돌아갔다.이후 오구라는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를 설립해 유물을 관리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후 ‘민간소장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에 반환되지 않다가,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사후, 그의 아들 야스유키가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품 전부를 기증했다.오구라 컬렉션에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 시기의 한국 유물이 포함돼 있다. 신라금동관모 등 39점은 일본의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이후 오구라 컬렉션은 민간 소유가 아니지만 불법 반출됐다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아 환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에 반출한 문화재 목록을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목록이 드러나면서 환수에 대한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추천 도서]
혜문 지음
작은숲 펴냄, 2012년 책의 저자인 혜문 스님은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등 강탈당한 문화재 환수운동에 앞장서 왔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관심은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책에서 일본식 조경에 오염된 청와대 대문의 석등을 철거하라고 말한다. 그의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은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활동이고, 그것은 결국 참마음의 제자리 찾기, 양심의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1906년 일본이 수집해 간 동학농민혁명군 장군의 유골이 반환된 지 20년이 되도록 방치되고 있다”며 조속히 안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골 역시 지하에 묻혀야 한다는, 다시 말해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라이 신이치 지음, 이태진·김은주 옮김
태학사 펴냄, 2014년 이 책은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아온 아라이 신이치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가 조선 말기와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재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11년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바 있다. 그는 2011년 4월 조선왕실의궤 등 귀중 도서 반환에 관한 한-일 협정을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가 심의할 때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반환 문제 는 식민지 지배 청산을 위한 기본틀이며, 역사자료 등 문화재는 그것이 태어난 환경이나 배경에 두어야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조선왕실의궤도 조선왕조 문화의 상징으로서 원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진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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