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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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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
독자 10여명 뜻 담긴 질문지 전달…답변 빠진 회신 실망
박근혜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등 3가지 문제 고뇌 기대
<한겨레>는 어둠의 시대 한줄기 빛으로 태어났다. 그 빛은 세상을 바꾸는 데 한몫했다. <한겨레>의 투박한 열정은 폭압의 시대를 끝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언론계에 던진 충격파도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소금’으로서의 <한겨레>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염치없는 세상,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다. 사회를 떠받치는 가치체계가 뒤죽박죽이다. <한겨레>의 그 투박한 열정을 그리워하는 소리가 높다.
첫 칼럼인 만큼 유강문 <한겨레> 편집국장에게 독자들의 비판과 아쉬움을 모아 전달할 필요를 느꼈다. 지난 19일 독자들의 뜻이 반영된 질문서를 전달했다. 이미 10여명 독자들을 만난 터였다.
나흘 뒤 편집국장의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그러나 답변이 빠진 채였다. 곤혹스러운 심경을 담은 짧은 회신이었다. 난감했다. 칼럼의 얼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길은 많다. 궁하면 통한다고도 했다.
‘대답 없는 질문지를 그대로 공개하자.’ 편집국장에게 보낸 질문지는 독자들의 의문이자, 한겨레의 숙제를 담고 있는 터다. 그 질문지는 앞으로 시민편집인이 <한겨레> 지면을 탐색하는 데 나침반이 될 것이다. 몇 마디 보충질문이 보태졌음을 밝힌다.
편집국장에게 던진 질문은 크게 세 토막으로 이뤄졌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박근혜 시대의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집중했다.
-한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파국을 향해 치닫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인의 고뇌가 엿보인다. 시인의 감수성을 언론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거짓’과 ‘위선’ ‘몰염치’가 판치는 세태에 절망하고 있다. 정치개혁, 경제민주화는 그 뒷전의 문제이다.
-언론의 할 일은 그 거짓과 불의의 시대를 바로 세우는 게 아닌가. 특히 정치인의 정략적인 말을 여과 없이 ‘중계’함으로써, 언론이 소모적인 정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체제의 ‘반칙’과 ‘몰염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치열하지 않다. 나라의 기틀을 뒤흔드는 행위에 대한 태도가 어정쩡하다. 비판적 보도 한편으로는 ‘정쟁’을 그대로 옮기는 편집태도도 엿보인다.
-창간 때의 ‘초심’과 ‘투혼’이 그립다.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의지도 약화된 느낌이다.
-자본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에서 불안을 느낀다.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도 많이 약화된 느낌이다. 자본 시장에 몸담고 있는 <한겨레>의 고뇌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딜레마를 어찌 돌파할 것인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한겨레>의 선택을 탓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광범위한 독자들을 설득하고, 현실에 그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겨레>의 전술적 선택에 문제는 없을까. 특히 진보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겸손하지 않은 진보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진보콤플렉스도 한겨레의 활력을 해친다고 보진 않는가? 이념적 깃발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행동반경을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보수-진보의 틀에 꿰맞춰 사회를 보는 방식이 적절한가? 스스로 이념적 좌표를 인식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회적 논란을 진영논리로 볼 때 논란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명백한 거짓말을 ‘진영의 방패’ 뒤에 숨어 외치는 현상도 있다.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조중동’이 거짓과 불의 앞에서 <한겨레>와 다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중동’은 적이 아니다. 그들과 언론의 발전을 위해, 사회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맞잡을 용의는?
-한겨레의 ‘진보를 위한 진보’, ‘차가운 진보’를 비판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 순리에 대한 통찰과 따뜻한 애정 없는 진보주의는 얼마나 공허한가.
디지털 세상은 활자 매체의 운명을 옥죄고 있다. 미처 손 쓸 틈을 주지 않고 종이신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디지털 문명은 종이신문의 콘텐츠, 취재시스템에 혁명적 변신을 요구한다.
-디지털 시대의 신문 뉴스 개념도 바뀐 것 아닌가. ‘시대의 기록’으로서 신문의 구실도 재검토 대상이다. ‘테라바이트’ 메모리 시대에 ‘단순한 기록’은 디지털에 넘길 때다.
-신문들이 탐사보도, 심층보도를 강화하며 디지털 시대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독자들도 ‘보도 자료’ 아닌 독자적인 취재물을 원한다. 심층 취재물 강화 전략은?
-한겨레는 ‘사실’보다 ‘기획 의도’가 강렬하다. 발로 뛴 기사, 땀방울이 밴 기사가 그립다. 취재시스템의 변혁, 기자 출입처 제도의 혁파를 결행할 때 아닌가?
-이른바 ‘진보지’도 탁상 위의 산물이라면 의미 없다. ‘진보’가 관념의 유희가 아님도 물론이다. 진보지라면 무엇보다 땀과 열정이 담긴 기사로 말해야 한다.
-이 밖에도 불만의 소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 때로는 지식을 과시하는 듯, 기사 문체가 어렵다. 정치 칼럼 재미없다. 교과서적인 얘기, 필자와 시각의 다양성이 빈약하다. 칼럼난은 영감을 주는 다양한 필자들에게 폭넓게 개방하라. 기사에 인용되는 전문가 코멘트의 편중도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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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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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대한 기대는 아직 크다. 그만큼 독자들의 눈초리는 매섭고 간절하다. 한겨레가 자랑하는 높은 신뢰도는 한겨레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한 치의 오차, 한 올의 결함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디테일의 법칙’은 한겨레에 한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독자들은 <한겨레>가 ‘짝퉁민주주의’를 방조한다고 불만스러워 한다. 한낱 ‘진영의 울타리’로 진보를 활용함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얻을 수 없다는 걱정의 소리도 들린다. 디지털 문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편집국장의 ‘답변 사양’이 서운했다. 그러나 곧 납득할 수 있었다. 그에게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승패에 자유로운 장기판 훈수꾼의 말에, 어찌 항변할 말이 없겠는가. 그의 침묵을, 새로운 <한겨레>를 위한 고뇌,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이해한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 이 칼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이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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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 금요일치 신문에 실리는 ‘시민편집인의 눈’은 시민편집인실의 <한겨레> 지면 감시 결과를 공개하고 <한겨레>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시민편집인실과 독자센터 등에 들어오는 독자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온라인(www.hani.co.kr)에서 각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중계합니다.
또 ‘사실확인’난은 오보나 단순 사실관계의 오류 체크를 독자에게 맡긴다는 취지에서 만들었습니다. 오류를 잡아내 시민편집인실로 보내주시면 한 편을 뽑아 소개하겠습니다. 뽑힌 독자께는 한겨레신문사가 발행하는 <한겨레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코노미 인사이트> 중 한 잡지의 6개월 구독권을 드립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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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실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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