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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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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편집인의 눈]
한겨레는 이석기 사건 실체 접근하는 데 최선 다했나
소통없는 강자의 독선은 무서운 독을 내뿜게 마련
어지러운 세상이다. ‘음습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쏟아지는 뉴스 홍수 속 신문 독자들은 혼란스럽다. 국정원의 헌법 유린과 국정원 개혁 논란, 그 소용돌이 속에서 터진 ‘내란음모’ 사건,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보도, 청와대의 검찰총장 ‘내치기’ 의혹 등 일련의 사태는 한결같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은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지하혁명 조직을 결성하고, 국가 전복을 노린 폭동을 모의했다.’ 국정원이 던진 충격파는 블랙홀이 되어 모든 현안을 일거에 삼켜버렸다. ‘국사범 이석기’는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구속 수감됐다.
동료 의원들조차 그를 외면했다.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토끼몰이’의 기세는 거셌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커밍아웃’을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잠자고 있던 ‘의원 제명안’이 되살아나는가 하면 그가 몸담고 있는 정당에 대한 해산론이 불거지기까지 했다.
이 의원의 언동이 상식을 배반한 것은 사실이다.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의 내용은 이 의원의 변명을 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의원도 참석한 모임에서 나온 발언은 대중의 눈높이엔 걸맞지 않았다. 문제 해결 방식이 폭력·파괴적이라는 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거부감은 컸다.
국정원이 혐의를 두고 있는 범죄 요건을 갖췄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구체적인 실행계획, 실현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녹취록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의원의 처신은 마땅히 비판받을 만하다.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터다. ‘종북의 냄새’만으로도 폭넓은 알레르기 반응을 빚어냈다. 이는 진보진영의 활동에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역시나 때를 만난 듯, 새누리당은 한때 ‘야권 연합’의 짝꿍이었던 민주당에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는가. 국정원의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함성이 한때 잦아들 정도였다.
이 의원은 마땅히 자신의 잘못만큼의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국정원·검찰의 수사와 사법처리 과정에서 중대한 죄목에 걸맞은 엄정성이 요구된다. 죗값은 정당하게 요구하되, 여론의 파도에 떠밀려 애먼 돌팔매질을 할 일은 아니다.
한편, 국정원의 죗값이 어물쩍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국정원의 범죄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헌법 체계를 짓밟은 중대 범죄이기 때문이다. 굳이 범죄의 크기를 헤아린다면, 이석기의 내란음모 사건을 오히려 능가한다. 조직력과 실현성, 범죄에 대한 불감증 등을 고려할 때 무서운 국기문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의 범죄 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무덤덤한 반응은 실로 놀랍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포괄적인 책임자이자, 사건 당시 대선의 당선자로서 어찌 무관하단 말인가.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인사와도 공조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마당이다. 국정원의 개입이 선거에 미친 영향력의 실제 크기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검찰총장의 사퇴 파문도 국정원 범법·개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채동욱 총장은 사건의 주범이라 할 국정원장과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혼외아들 의혹 보도와 법무부 감찰, 총장 사퇴 선언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부자연스럽다는 점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취재 보도 과정은 정당했는가. 저널리즘의 원칙에 어긋나는 기사가 어떻게 활자화될 수 있었나. 불순한 권언유착의 산물 아닌가. 청와대는 정녕 떳떳한가. 3자회담에서 채 총장 감찰에 대해 밝힌 대통령의 입장은 앞뒤가 맞는가. 어렵게 마련된 3자회담 자리에서 대통령은 난국 타개의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했는가.
문득 대통령의 금도(襟度)를 떠올린다. 금도,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 세상의 난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숨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금도에 담긴, ‘도량’ ‘배려’ ‘분별’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 등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무릇 금도란 강자의 덕목이다. 그것은 힘센 자의 탐욕과는 거리가 먼, 약자를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과 생각 아닌가. 배부른 사자가 눈앞의 먹이를 두고도 탐하지 않는 것처럼.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공격할 때 활용하는 단골 무기, ‘민생’을 새삼 반추해 볼 필요를 느낀다. 국가기관이 앞장서 나라의 기틀을 뒤흔드는 일은 민생과 무관한 일인가. 나라의 화평이 민생의 근본인 터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세상의 ‘배부른 돼지의 삶’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민생’이 아닐 터.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도 안타까운 일이다. 약속 파기를 단순한 숫자놀음으로 모면하는 것은 대통령답지 않다. 백성의 허허로운 지갑에 대한 측은지심의 발로 아니었던가. 한 표라도 더 얻어 보겠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약속한 것이란 말인가. 경제민주화 정책의 후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난 3자회담 풍경은 아름답지 못했다. 소통 없는 강자의 ‘원칙’은 독이다. 독선은, 특히 강자의 독선은 무서운 독을 내뿜게 마련이다. 약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강자의 금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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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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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든 아니든, <한겨레>에 대한 기대는 유별나다. 그것은 엄정한 잣대에 대한 오랜 목마름 때문이다. 이석기 사건 이후 <한겨레>는 대체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다소 성실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결과적으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한겨레>도 합류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적어도 녹취록의 무대인 5월 모임 참석자를 찾아내 만나 본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또 9월24일치 <한겨레> 사설 ‘불통 정권에 백기 든 무기력한 야당’은 역설적으로 언론이 남긴 불행한 상처의 흔적이기도 하다. 적절한 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쪽으로 기운 한국적 언론 환경의 소산이기도 한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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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 금요일치 신문에 실리는 ‘시민편집인의 눈’은 시민편집인실의 <한겨레> 지면 감시 결과를 공개하고 <한겨레>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시민편집인실과 독자센터 등에 들어오는 독자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온라인(www.hani.co.kr)에서 각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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