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론·언론개혁·전관예우보다 몰염치한 현재 권력 등
박근혜 정부 아래서 생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대응하길
웃지 못할 일이다. 총리 후보자가 거듭 낙마했다. 그 자리는 이미 ‘흘러간 물이 거슬러 올라와’ 차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가 빚어낸 참사였다. 과거에 갇힌 박 대통령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절망에 젖었다.
세월호 참사 뒤,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를 개조하자’고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인사는 만사’가 결코 허튼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는 대통령 통치철학의 ‘그림자’인 터다. 무엇이 시대적 과제인지,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데 누가 적임자인지, 대통령의 인식과 전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 치도 변함없는 ‘과거’를 고집했다.
문창극 후보자의 낙마 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어정쩡한 태도도 ‘새 시대’에 걸맞지 않았다.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능동적으로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도리였다.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은 법. 오늘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미래는 없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임을 거듭 일깨워준 셈이다.
문제는 ‘세월호’ ‘박근혜’가 곳곳에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적폐, 곧 ‘찌든 버릇’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던가. 담배 쓴맛도 잊기 어렵거늘, 권력 휘두르는 달콤한 맛을 누가 포기하려 들겠는가.
언론은 특히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탠 또 다른 ‘박근혜’다.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정치의 ‘일등공신’은 언론이다. <한겨레>도 이 점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겨레>의 ‘생각’이 궁금했다. 새 시대를 위해서는 언론의 ‘혁명적 탈바꿈’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터다. 편집국장에게 ‘서면질문’을 보냈다. 질문지 내용은 독자들의 뜻을 반영했다고 믿는다.
답은, 이 원고의 마감 전날 돌아왔다. 편집국 간부들과의 논의 끝에 ‘대답하기 적절치 않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편집국장의 말이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 한겨레의 편향성을 비판하기도 하는 터에 조심스럽다.’ 그 질문지를 거의 그대로 옮긴다. 독자들과 함께 ‘한겨레의 고뇌’를 곱씹어볼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극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반성의 소리가 높습니다. 그 방향은 전방위적입니다. 그러나 초점은 두 갈래로 모아집니다. 하나는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정치권력과 정치문화의 혁파, 다른 하나는 사회 정화 기능을 상실한 언론의 재탄생입니다.
<한겨레>는 기대와 함께 아쉬움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에 <한겨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국장의 육성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그리고 한겨레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개조론’과 ‘언론개혁’을 중심으로 질문지를 꾸렸습니다. 교과서적인 모범답안보다는, 평범한 독자들이 읽기 편한(현장감이 느껴지는) 어법으로 설명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은 다소 생뚱맞다. (대통령의 진정성은 믿어도 좋은가. 그 철학적 바탕은 신뢰할 만한가.)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적폐’의 산물로 치부하고 있다. 적절한 진단인가. (대통령의 방략은 현실적이고 시의적절한 처방인가.)
-‘대통령의 적폐’ 해소가 ‘개조’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 변수일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대통령중심제의 ‘청와대 정치문화’를 중심으로 설명해 달라.)
-‘전관예우’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현재 권력의 몰염치가 더 급하고, 큰 문제 아닌가.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상징되는 독선적 박근혜 인사, 이를 감싸고도는 집권당의 태도, 세월호 참극에서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태도 등.)
-‘사람이 중심’이라는 한겨레의 문제의식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은 ‘사람 중심’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가.
-국가개조는 제도의 개혁 아닌 근본 바탕의 수술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근본적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박근혜 통치철학의 ‘깊이’와 오류를 중심으로.)
-KBS 사장 해임 사태를 계기로 ‘길 잃은 언론’의 문제가 새삼 부각됐다. 언론개혁에 대한 <한겨레>의 인식과 의지를 듣고 싶다.
-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실상이 궁금하다. (통제 및 ‘협조 요청’ 등 구체적 방식을 중심으로.)
-거짓과 참을 구분하는 데 추상처럼 엄정하지 않다. (위선과 거짓에 <한겨레>는 너그럽다. 특히 정치적 논란에서 명백한 거짓말을 중립적으로 전하는 경향이 있다. ‘팩트’ ‘형평성’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비판도 귀담아들을 일이다.)
-‘거짓의 언론’과 ‘거짓의 정치’는 ‘이란성 쌍생아’다. ‘국가개조론’도 말잔치로 끝날 위험성도 있다. 말잔치 정치는 거짓의 정치와 다름없다. 이를 근원적으로 퇴치할 대책은?
-<한겨레>는 언론의 책무에 부끄러움이 없는가. (한겨레 등 ‘참 언론’을 지향하는 언론사가 수적으로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언론계의 병든 풍토를 설명하는 데 ‘핑계’가 될 수 있는가.)
-세월호 참극 보도 과정에서 ‘현상, 현실’과 동떨어진 보도가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보도자료 베껴쓰기, 기자실 문화의 병폐에서 <한겨레>도 자유스럽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기자실’ 제도의 혁신을 포함한 보도시스템의 변화를 꾀할 때 아닌가.)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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