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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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있는 듯한 ‘정윤회 문건’…객관적 근거 없는 헌재 결정문
치열한 언론정신 사라진 찌라시 시대…‘한겨레’가 바로잡아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의혹이 담긴 ‘정윤회 문건’을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교시’에 국정 농단 의혹은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청와대 비서관이 작성한 보고서의 유출 경로가 검찰 수사의 도마 위에 올랐을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수난당하는 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문건을 결코 찌라시로 여기지 않는다. 그 문건의 진실성을 확신해서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잇단 ‘깜짝 인사’ 스타일 탓이다. 인사는 만사라고 흔히 말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나라 살림을 맡는 중책이다.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히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진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그 역동성이 죽고 살고 하는 것도 인사에 달려 있다. 인사에는 정권의 통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인사 솜씨는 국민의 폭넓은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참신한 사람보다는 흠결투성이 인사가 많았다. 적임자 대신 ‘보은 인사’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 많은 인사청문회 대상자 가운데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사람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을 채울 수나 있을까. 물러난 총리를 되쓴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용병술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근거 없는 풍설을 모아 놓은 찌라시로 치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찌라시가 선을 보였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선고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 그것이다. 결정문은 정당 해산의 객관적 근거를 담아내지 못했다. 뚜렷한 증거 없는 ‘사형 선고’는 ‘사법 살인’에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위협하는 헌재의 결정은 법 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도 하다. 헌재는 법의 엄정성을 짓밟았다. 정당 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와 가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조처’라는 법의 정신을 어겼다.
헌재의 결정은 억지스럽다. 헌재는 헌정 사상 첫 정당 강제해산을 판결하면서, 통합진보당의 강령 ‘진보적 민주주의’를 문제 삼았다.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과 거의 같다는 게 핵심 논지다. 이는 제헌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실로 허튼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제헌헌법이야말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터다. 제헌헌법이 통합진보당 강령보다 한층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정당 해산의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통합진보당에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가 없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말이다.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아직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헌재 판단의 진지성을 의심하게 한다. 고등법원은 이 사건의 핵심 쟁점 두 가지에 대해 이미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내란음모 혐의와 폭력혁명조직인 아르오(RO)에 대해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할 때 결정적인 빌미로 삼았던 사안이다.
8 대 1.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관의 찬반 의견 분포다. 말 없는 숫자가 이 시대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숫자에서 ‘억압’과 ‘경직성’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다양성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이자 생명력의 원천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인권의 모태이다. 약자 보호 정신, 사회 통합 원리의 뿌리이기도 하다. 헌재 구성 방식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나라 밖에서 이번 헌재 결정을 바라보는 눈도 마음에 걸린다. 국제적 기준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판단한다면 국제적 망신이자 국격의 치명적 손상이기 때문이다.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헌재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 제출을 공식 요청했다. 벌써부터 헌재의 결정이 베니스위원회의 ‘정당 해산 5대 기준’에 맞지 않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로서 그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지 적이 의심스럽다.
찌라시 시대의 결정판은 언론이다. 언론이 진실과 확인된 정보의 상징이라면, 찌라시는 ‘미확인 첩보 모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칫 찌라시로 전락할 수 있는 게 언론이다.
지난 20일치 두 신문, <한겨레>와 <조선일보> 1면의 핵심 메시지는 극적으로 대비됐다. <한겨레>는 이례적으로 사설 ‘민주주의의 죽음, 헌재의 죽음’을, <조선일보>는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를 각각 실었다. 두 신문은 사설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평가에서도 엇갈린 논지를 폈다. 한쪽은 ‘확실한 근거 없는 결정은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이라고 규정한 반면, 다른 한쪽은 ‘종북 세력이 장악한 통진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헌재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헌법을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찌라시에 가깝다. 하나의 사실에 두 개의 상반된 목소리, 이는 대한민국 언론의 모순을 상징하는 표징이다. <한겨레>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헌재 결정의 논거의 취약성을 비판했다면, <조선일보>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극형을 선고할 때, 그 기준은 확고한 증거이지 피고의 인간 됨됨이가 될 수 없는 법.
요즘 맹위를 떨치고 있는 ‘종북’ 딱지의 어원을 곱씹어볼 필요를 느낀다. 이 말은 정치권에서 공격 무기로 ‘창안된’ 용어다. 꼭 북한과의 실체적 연계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이념적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이 말을 즐겨 쓰는 언론도 이 말 앞에서 주눅 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종북 집단’에 대한 취재 노력이 미흡한 점도 눈에 띈다. <한겨레>는 지난 23일치 4면에서 ‘해산 찬성 많은 이유, 진보당 정치 실패 탓도 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무관심 탓은 없는지 궁금하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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