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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3 18:05 수정 : 2019.11.14 17:35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19 피파(FIFA) U-20 월드컵이 연일 화제다. 20살 이하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라는 점에서 나이 제한이 없는 월드컵 축구 대회와는 다르지만, 국민의 열광 정도는 월드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지난 9일 새벽 U-20 월드컵 준준결승과 12일 새벽 준결승은 2002년의 열광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의 강호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골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내지 못하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세네갈과의 시합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에콰도르와의 박진감 넘치는 준결승도 명장면을 연출하였다.

축구의 승부는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유능한 심판뿐만 아니라 비디오 판독까지 동원하고 있다. 세네갈과의 시합에서는 무려 7번이나 비디오 판독이 이루어졌고, 에콰도르와의 시합에서도 여러 차례 비디오 판독이 승부를 갈랐다. 이제 모든 축구 시합에서 비디오 판독이 ‘정의의 사도’가 됐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은 공정함과 민주주의가 축구의 핵심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당시 축구계에 만연해 있던 특정 학교 학맥과 파벌에 기반한 선수 선발을 거부하고, 실력 위주로 대표팀 선수를 선발하였다. 그리고 과학적인 훈련과 자발적인 훈련을 강조하여 최선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훈련 방법을 도입했다.

히딩크 감독은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군대식 훈련’, 선후배 중심으로 ‘위계서열’ ‘불굴의 투지’와 ‘군기’를 강조하는 대신, 선수들 사이의 경쟁심을 유발하여 선수 개개인이 스스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계의 군사문화 전통을 민주적인 경쟁문화로 바꿨다. 축구계 저변에 흐르던 위계서열, 권위주의와 폭력문화를 바꿔놓았다.

그러나 축구 경기에서 개인들 사이의 경쟁만으로는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개인들 사이의 협력과 유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선수들 사이의 팀플레이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자신과 더불어 동료 선수들의 마음과 움직임을 미리 읽는 교감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위압적이고 다그치는 관계가 아니라 선후배를 떠나서 경기장에서 동료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 서로서로가 이름을 부르도록 하였다.

<한겨레> 6월10일치 ‘이강인 기세 몰아 결승행’이라는 기사를 보면, 한국 대표팀에서 ‘막내형’으로 불리는 이강인 선수는 인터뷰에서 “형들과 경기를 해서 기쁘다. 경기를 뛰지 못한 형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이라는 점과 더 나아가 시합에 뛰지 않은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있다. 매우 이례적인 인터뷰였다. 폴란드까지 와서 시합에 뛰지 못한 다른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준결승에서 에콰도르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낸 이광연 골키퍼도 마찬가지였다. 6월13일치 <한겨레>는 ‘조마조마한 순간, 빛광연 날았다’라는 제목을 달아 골키퍼의 눈부신 활약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광연 골키퍼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한 동료 두 명의 골키퍼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배려와 공감능력이 강팀을 만들었다.

이번 U-20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이력이 다양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되어 있는 팀이나 학교도 그야말로 다양하다. 능력 위주로 선발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오합지졸이 아니라 주전, 비주전과 코칭스태프들이 ‘원팀’이 되어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U-20 월드컵 축구가 3주 동안 진행되는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일 뿐이지만, 공정한 경쟁과 배려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매우 크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반칙과 편법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공감과 배려심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9년 U-20 월드컵 축구 대표팀에 대한 열광이 축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로 불타오르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요즘 전세계를 움직이는 한국의 영화, 음악과 함께 스포츠가 주는 자긍심과 열정이 정치, 경제와 사회 영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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