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교수·경제학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일본-중국-미국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가치사슬과 동아시아 분업체계의 최대 수혜자였다. 그러나 어떤 게임에서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수출경제에서 내수경제로의 전환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매우 높지만, 전환의 계곡은 너무 깊어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지출 확대, 공정경제만으로는 부족해 보이고, 혁신성장은 아직 멀어 보인다. 전환의 계곡에서 다리 구실로 재정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생산적 재정확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화두다. 이런 논의가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전쟁과 불황 시기를 제외하고 최고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재정을 통한 그린뉴딜과 의료보험 개혁을 제안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일시적 호황에 따른 세수추계 오류로 결과적 긴축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재정적자 하한선을 설정하는 ‘슈바르츠 눌’을 포기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재정적자율 3%-부채 규모 60%’라는 유럽연합(EU)의 안정성장협약도 과도한 긴축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도, 2012년 토마 피케티의 r>g(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는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g>r가 주목을 받고 있다.(블랑샤르는 자신의 r은 안전자산(국채) 수익률이기 때문에 피케티의 r과는 다르다고 한다) g>r는 재정 확대의 근거다. 경제성장률이 국채 이자율보다 높다면, 정부 부채의 비용이 크지 않아 적자재정을 통해 경제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때까지 정부는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까지도 주류 학계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이자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4%대였던 국채 실질금리가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1% 미만이다. 이는 국채에 대한 위험선호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으로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낮아졌다는 점, 외환위기 이후 동아시아 나라들이 순자본수출국이 되었다는 점, 자본재 가격이 하락하고 노동분배율이 하락하였다는 점 등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령화, 저금리와 저물가, 불평등 심화 등 우리 경제가 처한 조건과 환경도 재정 확장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해준다. 재정 여력도 충분하다. 다만 이런 요인들이 성공적인 재정확장 전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재정 확장-성장률 회복-재정 안정’의 선순환이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재정확장 전략은 어떤 경제체제를 구축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계돼야 한다. 재정 건전성, 경상수지 흑자,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는 외환위기 이후 전면 개방 체제로 전환한 한국 경제의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집착을 100% 탓할 수만은 없다. 미래의 재정확장 전략은 인프라, 연구개발, 일자리, 에너지, 교육, 복지 등에 대한 미래 전략과 개혁 프로그램과 결합돼야 하며, 국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국가적 공공사업에 대한 국채 발행은 경제적으로 타당성 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이 제시될 때 가능하다. 확대된 재정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능한 정부, 때로는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기업가적 정부가 필요하다. 둘째, 재정확장 전략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 재정위기 때 좌우 정파 간 엄청난 이념적 대립이 있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평가절하를 통한 경제성장률 회복 이외에도, 재정 준칙과 자동안정화 메커니즘보다 재정 전략에 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 그리고 재정 투명성이 중요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추진력이 약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여야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국가재정전략위원회를 만들어 국가의 미래 재정 전략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야당을 참여시켜 총선용 단기적 재정 확대라는 야당의 의구심을 떨치게 하자. 야당도 미래에 집권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참여할 동기가 있을 것이다. “증세냐 감세냐, 지출 확대냐 세금 감면이냐”의 논쟁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구시대적이다. 어려워지는 경제 환경에서 국민들은 ‘생산적 재정확장’을 위한 여야의 합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칼럼 |
[세상읽기] 여야가 참여하는 국가재정전략위를 만들자 / 전병유 |
한신대 교수·경제학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일본-중국-미국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가치사슬과 동아시아 분업체계의 최대 수혜자였다. 그러나 어떤 게임에서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수출경제에서 내수경제로의 전환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매우 높지만, 전환의 계곡은 너무 깊어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지출 확대, 공정경제만으로는 부족해 보이고, 혁신성장은 아직 멀어 보인다. 전환의 계곡에서 다리 구실로 재정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생산적 재정확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시의적절하고 필요한 화두다. 이런 논의가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전쟁과 불황 시기를 제외하고 최고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재정을 통한 그린뉴딜과 의료보험 개혁을 제안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에서처럼 일시적 호황에 따른 세수추계 오류로 결과적 긴축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재정적자 하한선을 설정하는 ‘슈바르츠 눌’을 포기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재정적자율 3%-부채 규모 60%’라는 유럽연합(EU)의 안정성장협약도 과도한 긴축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학계에서도, 2012년 토마 피케티의 r>g(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이 주목을 받았다면, 올해는 올리비에 블랑샤르의 g>r가 주목을 받고 있다.(블랑샤르는 자신의 r은 안전자산(국채) 수익률이기 때문에 피케티의 r과는 다르다고 한다) g>r는 재정 확대의 근거다. 경제성장률이 국채 이자율보다 높다면, 정부 부채의 비용이 크지 않아 적자재정을 통해 경제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때까지 정부는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까지도 주류 학계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이자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4%대였던 국채 실질금리가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1% 미만이다. 이는 국채에 대한 위험선호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으로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낮아졌다는 점, 외환위기 이후 동아시아 나라들이 순자본수출국이 되었다는 점, 자본재 가격이 하락하고 노동분배율이 하락하였다는 점 등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령화, 저금리와 저물가, 불평등 심화 등 우리 경제가 처한 조건과 환경도 재정 확장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말해준다. 재정 여력도 충분하다. 다만 이런 요인들이 성공적인 재정확장 전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재정 확장-성장률 회복-재정 안정’의 선순환이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재정확장 전략은 어떤 경제체제를 구축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계돼야 한다. 재정 건전성, 경상수지 흑자,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는 외환위기 이후 전면 개방 체제로 전환한 한국 경제의 대외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집착을 100% 탓할 수만은 없다. 미래의 재정확장 전략은 인프라, 연구개발, 일자리, 에너지, 교육, 복지 등에 대한 미래 전략과 개혁 프로그램과 결합돼야 하며, 국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국가적 공공사업에 대한 국채 발행은 경제적으로 타당성 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이 제시될 때 가능하다. 확대된 재정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능한 정부, 때로는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는 기업가적 정부가 필요하다. 둘째, 재정확장 전략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 재정위기 때 좌우 정파 간 엄청난 이념적 대립이 있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평가절하를 통한 경제성장률 회복 이외에도, 재정 준칙과 자동안정화 메커니즘보다 재정 전략에 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 그리고 재정 투명성이 중요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추진력이 약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여야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국가재정전략위원회를 만들어 국가의 미래 재정 전략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야당을 참여시켜 총선용 단기적 재정 확대라는 야당의 의구심을 떨치게 하자. 야당도 미래에 집권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참여할 동기가 있을 것이다. “증세냐 감세냐, 지출 확대냐 세금 감면이냐”의 논쟁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구시대적이다. 어려워지는 경제 환경에서 국민들은 ‘생산적 재정확장’을 위한 여야의 합의 정치를 볼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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