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교수·독문학 ‘조국 사태’가 몰고 온 후폭풍으로 교육개혁이 공론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 교육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교육 문제는 한국인의 모든 고통과 좌절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아이도 불행하고 부모도 불행하다. 교육제도의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도 불행하다. 서울대생의 절반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지 않는가.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곧 대학입시 문제이다. 모든 교육 문제가 대학입시라는 블랙홀로 수렴된다. 대학입시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교육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민들 또한 알고 있다. 입시제도 개선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 이번에도 불공정과 특권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경험으로 안다. 어떤 기막힌 제도를 내놓아도 기득권자들은 그것을 돈과 권력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 7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대학입시는 ‘개선’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학입시를 폐지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주는 고통과 폐해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첫째, 대학입시는 한국 교육을 고사시켰다. 모든 교육의 초점이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기에 학교는 배움을 통해 타인과 교감하는 곳이 아니라,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우열을 겨루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사지선다나 단답형 문제를 풀며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사유하지 않는 인간으로 굳어져간다. 교육의 목표가 높은 사유능력과 사회적 교감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한국 교육은 완전한 실패작이다. 둘째,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를 학벌계급사회로 타락시켰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평등지향사회이다. 기성권력집단(establishment)이 식민지배와 내전을 통해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송두리째 상실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학벌은 사라진 과거의 신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의 징표가 되었다. 한때 사회적 불평등을 교정하는 계급 사다리 역할을 했던 대학입시가 학벌계급사회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셋째, 대학입시는 한국인의 일상을 ‘사막화’(프랑코 베라르디)했다. 대학 입학에 목숨을 거는 사회에서 가정은 입시전쟁의 야전사령부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의 행복은 유보되고, 일상은 활기와 생동감이 사라진 건조한 사막으로 변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누려야 할 학생들은 청소년기를 혹독한 노예 상태에서 보낸다. 요컨대, 한국의 대학입시는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불모화하는 근원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입시가 없는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세상엔 그런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에는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아비투어(Abitur)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있을 뿐이다. 아비투어에 합격하면 누구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아비투어는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큰 무리 없이 대부분 합격한다. 또한 학생들은 대학과 학과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예컨대 베를린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을 옮기면 된다. 이러한 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폭넓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입시 없이도, 경쟁교육 없이도 강한 나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독일은 경제적으로 유럽연합을 이끄는 강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의가 중시되는 성숙한 사회다. 학교에서 경쟁하지 않는다고 학문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독일은 20세기 초 이래 노벨상 수상자를 100명 이상 배출했고, 연대교육과 비판교육을 강조한 68혁명 이후에도 40명 가까운 노벨상 수상자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근본적인 교육개혁을 할 의지가 있다면 대학입학시험의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없애야 교육이 정상화되고 삶이 정상화되며,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 교육을 살리고, 한국 사회를 살리고, 한국인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인을 옥죄어온 가장 무거운 족쇄, ‘학벌계급사회’로부터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칼럼 |
[세상읽기] 대학입시, 개선이 아니라 폐지가 답이다 /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조국 사태’가 몰고 온 후폭풍으로 교육개혁이 공론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 교육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교육 문제는 한국인의 모든 고통과 좌절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아이도 불행하고 부모도 불행하다. 교육제도의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도 불행하다. 서울대생의 절반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지 않는가.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곧 대학입시 문제이다. 모든 교육 문제가 대학입시라는 블랙홀로 수렴된다. 대학입시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교육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민들 또한 알고 있다. 입시제도 개선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 이번에도 불공정과 특권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모두가 경험으로 안다. 어떤 기막힌 제도를 내놓아도 기득권자들은 그것을 돈과 권력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 7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대학입시는 ‘개선’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학입시를 폐지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주는 고통과 폐해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첫째, 대학입시는 한국 교육을 고사시켰다. 모든 교육의 초점이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기에 학교는 배움을 통해 타인과 교감하는 곳이 아니라,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우열을 겨루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사지선다나 단답형 문제를 풀며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사유하지 않는 인간으로 굳어져간다. 교육의 목표가 높은 사유능력과 사회적 교감능력을 지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한국 교육은 완전한 실패작이다. 둘째, 대학입시는 한국 사회를 학벌계급사회로 타락시켰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평등지향사회이다. 기성권력집단(establishment)이 식민지배와 내전을 통해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송두리째 상실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학벌은 사라진 과거의 신분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의 징표가 되었다. 한때 사회적 불평등을 교정하는 계급 사다리 역할을 했던 대학입시가 학벌계급사회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셋째, 대학입시는 한국인의 일상을 ‘사막화’(프랑코 베라르디)했다. 대학 입학에 목숨을 거는 사회에서 가정은 입시전쟁의 야전사령부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의 행복은 유보되고, 일상은 활기와 생동감이 사라진 건조한 사막으로 변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누려야 할 학생들은 청소년기를 혹독한 노예 상태에서 보낸다. 요컨대, 한국의 대학입시는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불모화하는 근원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입시가 없는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세상엔 그런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에는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아비투어(Abitur)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있을 뿐이다. 아비투어에 합격하면 누구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아비투어는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큰 무리 없이 대부분 합격한다. 또한 학생들은 대학과 학과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예컨대 베를린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을 옮기면 된다. 이러한 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폭넓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입시 없이도, 경쟁교육 없이도 강한 나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독일은 경제적으로 유럽연합을 이끄는 강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의가 중시되는 성숙한 사회다. 학교에서 경쟁하지 않는다고 학문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독일은 20세기 초 이래 노벨상 수상자를 100명 이상 배출했고, 연대교육과 비판교육을 강조한 68혁명 이후에도 40명 가까운 노벨상 수상자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근본적인 교육개혁을 할 의지가 있다면 대학입학시험의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없애야 교육이 정상화되고 삶이 정상화되며,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 교육을 살리고, 한국 사회를 살리고, 한국인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인을 옥죄어온 가장 무거운 족쇄, ‘학벌계급사회’로부터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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