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연구자 양현석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 사실이 끝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성관계가 있었다는 것도 돈이 오갔다는 것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이 두가지만으로는 성매매가 이루어졌는지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일선 수사팀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특정인을 상대로 성관계와 금전거래가 있으면 통상 성매매라고 하지 않나? 현행법을 다시 찾아봤다. 내 기억이 맞았다. 성매매란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품 혹은 재산상의 이익을 수수하거나 수수하기로 약속하고 성교 및 유사성교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성관계도 있고 금전거래도 있었으며 접대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불기소처분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의 변은 이렇다. 첫째,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전거래는 있었으나 그것이 성관계에 따른 대가인지를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것, 둘째, 여행지에서 일부 성관계는 있었으나 그 횟수 등을 볼 때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매매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셋째, 해외 원정 성매매를 폭로한 ‘정 마담’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 얼마나 촘촘하고도 엄격한 법 적용인가. 한명이라도 억울한 시민을 만들 수 없다는 경찰의 의지에 경의라도 표하고픈 심정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던 차에 하은이(가명)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13살로 경계성 지적 장애 상태에 있었던 하은이는 엄마의 휴대폰을 망가뜨려서 혼날까 봐 집을 나가 잠자리를 구한다는 채팅방을 개설하고 실종되었고, 일주일 뒤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일주일간 6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건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검찰에서 그중 한명에게 치킨을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아니라 성매매 사건으로 기소한 것이다. 장애인과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에서 성폭력이 성매매로 바뀌는 일은 꽤 흔한 일이다. 그나마 이조차도 피해로 인정되지 않고 보호처분 등 실질적인 처벌 대상이 되는 일마저 있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성폭력이 성매매 사건이 되기는 이토록 쉬운데,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성접대’ 사건이 성매매 사건이 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성매매 수사는 검경의 의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 일단 성관계와 금전거래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10년 대규모의 검사들이 연루되어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검찰 성접대 사건 당시 총지휘를 맡았던 민경식 특별검사는 피고인들이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 4명과 동석한 사실은 확인되었으나 “장부에 성매매를 한 것처럼 표시되었어도 남성 측 사정 때문에 성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장부까지 있어도 성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해도 되니 법망 피해 가기라는 종목이 있다면 세계 챔피언급이라 할 만하다. 이렇듯 성매매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용의자들은 성관계 자체가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보통 성매매 단속은 현장을 직접 급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보자의 연락을 받고 성매매 장소로 사용된다고 알려진 모텔이나 오피스텔을 찾아가 성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콘돔을 확인하고 테이블에 놓여 있는 돈을 확인하는 식이다. 이 두가지가 확인되면 성매매의 물증이 있다고 보고 익명의 제보, 알선자의 자백 등을 추가하면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가 가능한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가장 통상적인 형태의 성매매 업소 등에서만 활용 가능하다. 실제로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은 외국에 나가거나 자택이나 별장 등에서 성을 거래하므로 이런 식의 단속에 노출될 일 자체가 없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그 횟수 등에서 볼 때 (성매매라 보기 어렵다)’라고도 했는데, 알다시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2년 전 이건희씨 자택에서 여자들을 불러놓고 500만원씩 현금을 건네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동영상을 찍어 이건희씨를 협박한 이들은 2018년 4월 실형이 확정되었고, 동영상에 찍힌 중국 동포 성판매 여성도 처벌되었다. 처벌되지 않은 건 이건희씨뿐이다. 이처럼 양극화의 리그는 사법이라는 영역에서 가장 견고하게 나눠져 공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착실하게 무너뜨렸다. 질라 아이젠스타인은 “여자와 소녀들의 신체가 민주주의를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맞다. 나는 더 이상 한국 사회를 민주 사회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칼럼 |
[세상읽기] 양극화 시대의 성매매 결정론 /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양현석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 사실이 끝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성관계가 있었다는 것도 돈이 오갔다는 것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이 두가지만으로는 성매매가 이루어졌는지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일선 수사팀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특정인을 상대로 성관계와 금전거래가 있으면 통상 성매매라고 하지 않나? 현행법을 다시 찾아봤다. 내 기억이 맞았다. 성매매란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품 혹은 재산상의 이익을 수수하거나 수수하기로 약속하고 성교 및 유사성교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성관계도 있고 금전거래도 있었으며 접대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불기소처분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의 변은 이렇다. 첫째,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전거래는 있었으나 그것이 성관계에 따른 대가인지를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것, 둘째, 여행지에서 일부 성관계는 있었으나 그 횟수 등을 볼 때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매매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셋째, 해외 원정 성매매를 폭로한 ‘정 마담’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 얼마나 촘촘하고도 엄격한 법 적용인가. 한명이라도 억울한 시민을 만들 수 없다는 경찰의 의지에 경의라도 표하고픈 심정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던 차에 하은이(가명)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13살로 경계성 지적 장애 상태에 있었던 하은이는 엄마의 휴대폰을 망가뜨려서 혼날까 봐 집을 나가 잠자리를 구한다는 채팅방을 개설하고 실종되었고, 일주일 뒤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일주일간 6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건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검찰에서 그중 한명에게 치킨을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아니라 성매매 사건으로 기소한 것이다. 장애인과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에서 성폭력이 성매매로 바뀌는 일은 꽤 흔한 일이다. 그나마 이조차도 피해로 인정되지 않고 보호처분 등 실질적인 처벌 대상이 되는 일마저 있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성폭력이 성매매 사건이 되기는 이토록 쉬운데,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성접대’ 사건이 성매매 사건이 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성매매 수사는 검경의 의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 일단 성관계와 금전거래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2010년 대규모의 검사들이 연루되어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검찰 성접대 사건 당시 총지휘를 맡았던 민경식 특별검사는 피고인들이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 4명과 동석한 사실은 확인되었으나 “장부에 성매매를 한 것처럼 표시되었어도 남성 측 사정 때문에 성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장부까지 있어도 성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해도 되니 법망 피해 가기라는 종목이 있다면 세계 챔피언급이라 할 만하다. 이렇듯 성매매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르는 용의자들은 성관계 자체가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보통 성매매 단속은 현장을 직접 급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보자의 연락을 받고 성매매 장소로 사용된다고 알려진 모텔이나 오피스텔을 찾아가 성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콘돔을 확인하고 테이블에 놓여 있는 돈을 확인하는 식이다. 이 두가지가 확인되면 성매매의 물증이 있다고 보고 익명의 제보, 알선자의 자백 등을 추가하면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가 가능한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가장 통상적인 형태의 성매매 업소 등에서만 활용 가능하다. 실제로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은 외국에 나가거나 자택이나 별장 등에서 성을 거래하므로 이런 식의 단속에 노출될 일 자체가 없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그 횟수 등에서 볼 때 (성매매라 보기 어렵다)’라고도 했는데, 알다시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2년 전 이건희씨 자택에서 여자들을 불러놓고 500만원씩 현금을 건네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동영상을 찍어 이건희씨를 협박한 이들은 2018년 4월 실형이 확정되었고, 동영상에 찍힌 중국 동포 성판매 여성도 처벌되었다. 처벌되지 않은 건 이건희씨뿐이다. 이처럼 양극화의 리그는 사법이라는 영역에서 가장 견고하게 나눠져 공적 영역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착실하게 무너뜨렸다. 질라 아이젠스타인은 “여자와 소녀들의 신체가 민주주의를 결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맞다. 나는 더 이상 한국 사회를 민주 사회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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