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필시 명절 대목이었을 것이다. 떡집네 다섯 식구는 힘들고 벅찬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수북이 쌓인 돈더미를 센다. 중2짜리 딸 은희는 돈을 세다 손이 아파 손목을 털고 있다. 피곤에 전 탓일까, 가족은 말이 없다. 얼마 전 본 영화 <벌새>의 한 장면이다. 관객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짧고 평범한 장면에서 나는 울컥했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틀림없이 자영업자 집안에서 성장했을 것만 같다. 나는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영업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노동만으로는 살림 건사가 어려워 어머니가 자영업에 나섰다. 아버지의 해고 후 두 분이 함께 가게를 꾸렸다. 새벽 여섯시부터 자정까지, 작은 가게와 딸린 방 두 칸이 두 분의 노동과 삶의 세계였다. 1년에 한번 대목 무렵이면 온 가족이 동원됐다. 나도 학업을 작파하고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길고 고된 노동이 끝나면 보람찬 시간이 돌아왔다. 수북한 돈더미를 색색이 나누고, 아픈 손목 털어가며 세어서 권종별로 액수를 맞춘다. 서로 바꿔가며 검산을 마치면 고무줄로 묶어 가지런히 쌓는다. 이윽고 장부에 매출을 적는다. 어머니는 글씨체가 반듯하다며 늘 내게 매출을 적게 했다. 돈맛도 좋았지만 그걸 세는 손맛은 더 좋았다. 그 손맛에는 내 노동이 살림에 기여했다는 보람 같은 것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호황기였다. 대목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두 분의 자영업은 아버지 여든까지 이어졌다. 하루 열여덟시간 초장시간 노동도 계속 이어졌다. 자식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자기 자본에 자기 노동을 더해 생계를 꾸리는 소자산계급의 노동은 종종 자기착취에 이를 정도로 과도해지곤 한다. 그 동기는 무엇일까? 더 많은 소득에 대한 욕망은 물론이지만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보람 같은 주관적 동기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실행된 농지개혁은 이 소자산계급의 동기가 지닌 거대한 힘을 잘 보여준다. 농지개혁은 시대의 화두였다. 일본인 지주를 조선인 지주로 바꾸자고 독립을 염원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은 지주의 나라를 소농의 나라로 바꾸는 과업이었다. 친일 지주 주축의 한민당 등의 저항이 있었지만, 민중의 염원과 북한의 선제 실행, 미국의 압력이 겹치면서 농가 1호당 3정보(9030평)를 분배하는 농지개혁이 단행됐다. 1980년대 후반 이래 연구의 진전으로 농지개혁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상당히 규명됐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맞서온 경제사학자 허수열의 논문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보면, 미곡 등 여러 곡물의 생산량은 농지개혁이 일단락되는 1955년부터 20여년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었다. 제 땅이 생긴 농민들은 더 많이 일했고, 추가소득을 자녀 교육에 투자했다. 그 자녀들이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토지경제학자 전강수의 논문 ‘평등지권과 농지개혁, 그리고 조봉암’을 보면, 1960년 한국의 토지분배 지니계수는 0.3 수준, 세계에서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 대만, 일본 등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했던 나라들이 2000년까지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계수가 2005년에는 0.8 수준으로 악화됐다. 완전 불평등에 가깝다. 금융자산의 불평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칼럼에서 기회평등론이나 복지강화론 같은 온건한 비판담론이 한계에 처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자들조차 급진적인 자산재분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환기하기도 했다. 이미 자산의 분배가 극도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그 재분배에 대한 고려 없는 기회평등론과 복지강화론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기본소득을 넘어선 기본자본 개념을 역설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역시 자산재분배 문제일 것이다. 참여사회주의라는 대안을 제기했다고도 한다. 연말이면 번역본이 나온다니 읽어볼 일이다. 기본소득이든 기본자본이든 왜 그것이 모든 사람이 받을 자격이 있는 정당한 몫인지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자산계급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며 반발할 것이다. 옛날의 지주도 그랬다. 중요한 건 이 화두로 논쟁하는 것이다.
칼럼 |
[세상읽기] 자산재분배, 피할 수 없는 화두 / 조형근 |
사회학자·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필시 명절 대목이었을 것이다. 떡집네 다섯 식구는 힘들고 벅찬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수북이 쌓인 돈더미를 센다. 중2짜리 딸 은희는 돈을 세다 손이 아파 손목을 털고 있다. 피곤에 전 탓일까, 가족은 말이 없다. 얼마 전 본 영화 <벌새>의 한 장면이다. 관객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짧고 평범한 장면에서 나는 울컥했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틀림없이 자영업자 집안에서 성장했을 것만 같다. 나는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영업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노동만으로는 살림 건사가 어려워 어머니가 자영업에 나섰다. 아버지의 해고 후 두 분이 함께 가게를 꾸렸다. 새벽 여섯시부터 자정까지, 작은 가게와 딸린 방 두 칸이 두 분의 노동과 삶의 세계였다. 1년에 한번 대목 무렵이면 온 가족이 동원됐다. 나도 학업을 작파하고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길고 고된 노동이 끝나면 보람찬 시간이 돌아왔다. 수북한 돈더미를 색색이 나누고, 아픈 손목 털어가며 세어서 권종별로 액수를 맞춘다. 서로 바꿔가며 검산을 마치면 고무줄로 묶어 가지런히 쌓는다. 이윽고 장부에 매출을 적는다. 어머니는 글씨체가 반듯하다며 늘 내게 매출을 적게 했다. 돈맛도 좋았지만 그걸 세는 손맛은 더 좋았다. 그 손맛에는 내 노동이 살림에 기여했다는 보람 같은 것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호황기였다. 대목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두 분의 자영업은 아버지 여든까지 이어졌다. 하루 열여덟시간 초장시간 노동도 계속 이어졌다. 자식들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자기 자본에 자기 노동을 더해 생계를 꾸리는 소자산계급의 노동은 종종 자기착취에 이를 정도로 과도해지곤 한다. 그 동기는 무엇일까? 더 많은 소득에 대한 욕망은 물론이지만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보람 같은 주관적 동기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실행된 농지개혁은 이 소자산계급의 동기가 지닌 거대한 힘을 잘 보여준다. 농지개혁은 시대의 화두였다. 일본인 지주를 조선인 지주로 바꾸자고 독립을 염원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은 지주의 나라를 소농의 나라로 바꾸는 과업이었다. 친일 지주 주축의 한민당 등의 저항이 있었지만, 민중의 염원과 북한의 선제 실행, 미국의 압력이 겹치면서 농가 1호당 3정보(9030평)를 분배하는 농지개혁이 단행됐다. 1980년대 후반 이래 연구의 진전으로 농지개혁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상당히 규명됐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맞서온 경제사학자 허수열의 논문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보면, 미곡 등 여러 곡물의 생산량은 농지개혁이 일단락되는 1955년부터 20여년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보릿고개를 넘었다. 제 땅이 생긴 농민들은 더 많이 일했고, 추가소득을 자녀 교육에 투자했다. 그 자녀들이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토지경제학자 전강수의 논문 ‘평등지권과 농지개혁, 그리고 조봉암’을 보면, 1960년 한국의 토지분배 지니계수는 0.3 수준, 세계에서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 대만, 일본 등 토지분배가 가장 평등했던 나라들이 2000년까지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계수가 2005년에는 0.8 수준으로 악화됐다. 완전 불평등에 가깝다. 금융자산의 불평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칼럼에서 기회평등론이나 복지강화론 같은 온건한 비판담론이 한계에 처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자들조차 급진적인 자산재분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환기하기도 했다. 이미 자산의 분배가 극도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그 재분배에 대한 고려 없는 기회평등론과 복지강화론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기본소득을 넘어선 기본자본 개념을 역설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역시 자산재분배 문제일 것이다. 참여사회주의라는 대안을 제기했다고도 한다. 연말이면 번역본이 나온다니 읽어볼 일이다. 기본소득이든 기본자본이든 왜 그것이 모든 사람이 받을 자격이 있는 정당한 몫인지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자산계급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며 반발할 것이다. 옛날의 지주도 그랬다. 중요한 건 이 화두로 논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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