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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9 18:42 수정 : 2014.09.09 18:42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도 노동 현장에 생산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우선 용역회사를 찾아 가는 것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 취업해 꽤 긴 기간 동안 노동자의 삶을 체험해보고 쓴 기획기사가 주목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기자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현장에 취업했다. 80년대에는 그토록 어렵던 ‘위장취업’이 요즘은 용역회사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조업체 생산직은 현행법상 노동자 파견이 불가능한 직종이다. 그런데 어떻게 실제로 제조업체 생산직에 파견 노동자들이 그토록 많을 수 있을까? 비밀은 ‘도급’이라는 외피에 있다. 내용상 파견이지만 겉으로 도급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소사장제’나 ‘사내하청’도 내용상 불법 파견인 경우가 많다.

합법적 도급으로 인정받으려면 업무가 완벽하게 독립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조업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업무가 앞뒤 공정과 독립돼 이루어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그동안 법원이 내용상 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면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으니, 현대차에서 2년 넘게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사건에 대해, 내용상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그 뒤 노동자 1569명이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고,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520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1004명도 비슷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현대차 사내하청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을 코앞에 두고 현대차 노사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5년 말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40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4000명에는 이미 채용한 2038명이 포함돼 있으니 사실상 신규 채용은 1962명인 셈이다. 모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도 합의에 포함됐다. 회사는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을 면담해 인감증명서를 받아 소취하서를 제출했고 법원은 선고를 연기했다. 언론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도했고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런데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 현대차노조, 아산·전주비정규지회가 마련한 이 합의안에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는 동의하지 않았다. 합의서 어디에도 ‘불법파견’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고 재발 방지 대책도 없는 등 오히려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를 신규 채용하면서 ‘불법 파견 노동자’를 ‘합법 도급 노동자’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는 합의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둘러싸고 220명이 해고됐고, 2명이 분신했다. 울산공장에서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20번이나 구속됐고, 노동자들은 열사를 두 명이나 가슴에 묻었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127개 사내하청업체의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을 때, 또는 2010년 최병승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회사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이와 같은 희생들은 없었을 것이다.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에서는 이번 합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고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앞으로 외로운 소수로 남아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확인을 하느라고 최병승씨에게 전화를 했다. 원고 내용을 본 최병승씨가 말한다. “우리 내용이 줄어들더라도 재능교육 유명자,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 얘기도 꼭 해주세요.” 아,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 사회 한줌밖에 안 된다는 소수의 운동권 안에서 또 다른 소수라는 것이다. 소수 안의 소수를 기억하자.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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