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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0 18:41 수정 : 2014.12.30 18:41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허리 높이쯤 되는 바닷물이 초고속열차보다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지진해일(쓰나미)에서 살아남기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올 한해 동안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 겪은 고용환경에 관한 일들은 “쓰나미처럼 노동자들에게 들이닥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가혹했다.

지난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선장과 조타수를 비롯해 핵심 선원들 중 대다수가 6개월 내지 1년짜리 비정규직이었다. 직장에 애정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고쳐서 계속 일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6개월만 때운 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사람들이었다. 누가 세월호 선원이 됐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확대한 비정규직 고용이 안전을 위태롭게 해 재앙을 일으킨 나쁜 경우였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콜텍기타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법원이 지정한 회계법인은 “회사의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통기타 사업의 수익성이 양호하므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감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기업들은 이제 막연히 짐작되는 미래의 경영상 어려움에 대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1월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적정 규모는 ……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만큼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곧이어 정부는 ‘쉬운 해고’를 공식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이 벽을 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영화 <카트>에서 경영자가 내뱉은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라는 전근대적 경영자관을 복잡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직도 이제 비정규직처럼 회사가 원할 때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유일한 생존의 근거이니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제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하지만 이 말은 사기에 가깝다. “정규직 전환 시기를 2년에서 4년으로 늦춘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고용노동부는 “기간제 근로자 1186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근로계약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가 무려 82.3%에 달했다”면서 이러한 조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것인 양 치장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들이 2년이 지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2년이 될 때마다 비정규직을 반복해서 해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인 비정규직 고용계약 기간을 스스로 늘려달라고 요구할 노동자는 없다.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랬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랬나”는 구호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행법의 ‘기간 제한 2년’ 규정을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일자리에 적용하도록 하면 된다. 2년이 지난 일자리는 어차피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이니 사람이 바뀌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이 쉬운 방법을 외면한 채 정부가 아무리 다양한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기업의 요구를 대변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비정규직 고용을 계속 늘리는 “이 벽을 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업이 적정한 고용을 유지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경제도 성장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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