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는 16년 전 ‘노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그 무렵 우리 사회 활동가들의 행태가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반성이 일기 시작했고 그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던 나는 노동대학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입학식에서 굳이 나를 일으켜 세워 사람들에게 소개하던 학장이 “노동대학이 제대로 하는지 못하는지 감시하러 오신 모양입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나는 1기, 2기, 3기 낙제생이었다. 도저히 출석 일수를 채울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학사관리가 엄격했다는 뜻이다. 요즘은 입학식 인사말을 할 때마다 “낙제생이었던 사람이 학장을 맡았으니 노동대학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2013년 우여곡절 끝에 ‘노동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입학식을 1박2일 수련회로 치르는 전통을 16년째 지켜오고 있다. 며칠 전 입학식 날, 휴대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노동대학 1기 졸업생 오○○입니다. 이번 31기에 제 아들이 입학했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드디어 부자지간 동문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흐뭇했다. 그 아버지가 지난주 수업에 참석했다. 굳이 불러내어 인사말을 부탁했다. 사람들 앞에 나와 선 자그마한 체구의 노동자가 입을 열었다. “30년 동안 지하철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중에 15년을 해고 노동자로 살았어요. 2012년에 복직했는데요, 제가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노동 현장과 우리 사회의 안전에 관한 일입니다.” 1985년 일본에서는 일본항공(JAL)의 보잉 747 비행기가 산악지대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건으로 520명이 사망했다. 철도 사업이 민영화된 이후 대형 사고가 잇따라 1991년 시가라키역에서 열차가 정면충돌해 42명이 숨지고 614명이 다쳤다. 2005년에는 아마가사키시의 곡선 구간에서 급행 전철이 속도를 줄이지 않아 탈선·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해 107명이 사망했다. 오○○씨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우리에게는 ‘팽목항’이나 다름없는 일본의 사고 현장들을 방문하고 진상 규명과 추모 관련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 아픔을 함께 나눴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자신의 활동을 간단히 소개한 그는 “우리 노동운동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15년 동안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이 “노동운동은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며 그 진정성이 온전히 가슴으로 전해졌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거나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꿈과 희망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없지 않다. 15년 동안 해고 노동자로 살았던 노동자가 이야기하는 ‘꿈과 희망’이 그 모습들 위에 겹쳐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