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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3 18:10 수정 : 2017.05.23 19:07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세월호에서 숨진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도 순직으로 인정하는 형평성이 실현되는 모습을 희망의 약속으로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지난달 칼럼을 끝맺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그 소망이 보란 듯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강의실에 자리가 듬성듬성 비었다. 출석을 부르는데 대답이 없자 다른 학생이 대신 답한다. “연행됐습니다.” 홍보물을 나눠 주며 상황을 설명하던 학생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제자들이 연행되는 세상에서 스승은 멀쩡하다는 게 강의 시간 내내 미안했다.

3년 전 5월에 썼던 짧은 글이다. 학생들이 나눠 주던 홍보물 제목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14년 5월18일, 34년 전의 반복” 해마다 5월 즈음에 이런 일을 겪었는데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추억을 공유한다. “나는 이때 무슨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냥 집회에 간 건데 친구들 개 잡히듯 다 잡혀가고 아스팔트에 긁히고…. 다음날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선배들이 다 잡혀가서 자보를 어떻게 쓰네 마네, 강의실에 들러서 호소를 하네 마네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하종강 쌤 강의실에 들어가서 발언하다가 혀 꼬여서 울먹이고….”

다른 학생이 또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나도 이때 엄청 울었다.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아무도 없어서… 그런데도 학교가 돌아가는 게 너무 소름 끼쳐서…. 그런 죄책감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지려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제자들이 잡혀가는 세상에서 멀쩡하게 강의하고 있는 걸 미안하게 생각하는 스승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이 때 묻지 않은 새내기 학생에게는 소름 끼치는 일이기도 했다. 항상 그렇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흐뭇해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이 소름 끼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석연치 않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세월호에서 숨진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 교사처럼 순직으로 인정하는 형평성이 실현되는 모습을 희망의 약속으로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지난달 칼럼을 끝맺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스승의 날’을 맞아 그 소망이 보란 듯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았다. 당연히 무척 기쁜 일이다. “논란을 끝내고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며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들 두 분 교사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하려고 한다”는 이유 설명에 이르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격스럽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두터운 신뢰가 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예전에는 ‘기간제 교사’라는 명칭이 아예 없었다. 과거 정권에서 교육 현장에까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도입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처럼 관철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6개월 내지 1년짜리 선생님들이 ‘기간제 교사’다. 중학생들도 눈치채고 “정교사로 담임 배치해 달라” 요구하고 심지어 고등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이 문제가 됐을 때 “기간제 선생님을 때린 게 잘못이냐”는 글을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학생도 있었다.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현실성이 전혀 없는 요구”라고 일언지하에 무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지하게 검토할 테니 차근차근 해결해 보자고 답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엄연히 권력의 의지다.

지난 대선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각 후보들의 공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대동소이해졌다. 비정규직을 늘리겠다고 주장한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 등의 표현으로 비정규직 공약이 정리됐고 나중에는 이러한 내용들을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라는 용어로 구체화한 후보도 있었다. 이 말은 출산이나 질병 등으로 잠시 자리가 비었을 때, 또는 단기적으로 존재하는 업무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비정규직 채용이 가능토록 ‘제한’하던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세대가 노동법을 처음 공부하던 30여년 전에는 법원의 판례와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그랬다.

앞으로 그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노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고 정부는 어떻게 답하느냐 하는 것이 새 정부 노동정책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신당했다”고 성급히 판단하거나 “왜 등에 칼을 꽂느냐?”고 서로 비난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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