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시대에 역행하여 ‘근로’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조선근로정신대’나 한국전쟁 당시의 ‘전시근로동원법’처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스무 차례도 넘게 찾아가 조합원 교육을 했을 만큼 가깝게 지내던 노동조합이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당연히 찾아갔다. 조합원들은 운동장 가장자리 가로수 그늘 아래 흩어져 앉아 있었고, 강사 혼자 그늘 한 점 없는 한여름 땡볕 아래 서서 “생각은 달라도 행동은 같이 한다!”, “책임은 나눌수록 강해진다!”, “전체가 하나처럼!” 이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한동안 연락이 없어 이상했는데, 한참 지나서야 까닭을 알았다. 그 노동조합에 다녀온 후배 활동가가 웃으며 사연을 전해준다. “하 선배가 교육할 때 ‘근로자’란 단어를 사용했다면서요. 그래서 인연을 끊었다던데….” 절반쯤은 농담이겠고 인연을 끊은 이유가 어찌 그것 하나뿐이겠냐마는 민주노총 핵심 사업장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민주노조’에 와서 교육을 한다는 강사가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두고두고 간부들 입에 오르내렸을 만큼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점이 나는 ‘근로자’란 표현을 사용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강의할 때마다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니 무심결에라도 ‘근로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 짐작으로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노동법 조문을 설명할 때, 원문 그대로 옮기면서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의를 들은 사람이 앞뒤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강사 입에서 ‘근로자’라는 단어가 나왔던 장면만 기억하고 조리돌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억울한 느낌이 들기는 매한가지다. 지난 학기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그 학생의 기말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대목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16세 이상 노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라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 교수, 의사, 환경미화원 등이 다 노동자이다. 이 수업을 들어보니까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 ‘근로자’라는 호칭도 있는 게 신기하다.” 한자를 주로 쓰는 중국에서 태어난 청년이 20여년 살아오는 동안 ‘근로자’란 단어를 보지 못했다가 한국에 와서 처음 보고 신기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중국에 ‘근로자’란 단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을 정도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단어였을 것이다. ‘근로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단어이다. ‘노동자’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새롭게 나타난 ‘임금생활자’를 뜻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동’ 역시 단순히 ‘부지런하게 일한다’는 뜻의 ‘근로’와 달리,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임금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널리 사용되는 단어이다. 시대에 역행하여 ‘근로’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조선근로정신대’나 한국전쟁 당시의 ‘전시근로동원법’처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몇 해 전 경기도교육청이 ‘민주시민’ 과목을 개설하고 교과서를 개발했을 때, 그 교과서의 노동 단원 집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로 참여한 교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학교 급식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아주머니’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과 ‘노동자’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한동안 맞서다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표기하기로 결론을 맺었다. 최근 이언주 의원의 “밥하는 아줌마” 발언이 논란이 되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활동가가 직면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조직 대상인 노동자들조차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조를 조직하느라고 고생하는 활동가가 “1000명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5명이 참석했다”고 하소연을 하자, 다른 사람이 “천명 문자에 5명이면 성공하셨네요”라고 위로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무시해도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한다.
칼럼 |
[하종강 칼럼] 중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근로자’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시대에 역행하여 ‘근로’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조선근로정신대’나 한국전쟁 당시의 ‘전시근로동원법’처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스무 차례도 넘게 찾아가 조합원 교육을 했을 만큼 가깝게 지내던 노동조합이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파업이 벌어졌을 때도 당연히 찾아갔다. 조합원들은 운동장 가장자리 가로수 그늘 아래 흩어져 앉아 있었고, 강사 혼자 그늘 한 점 없는 한여름 땡볕 아래 서서 “생각은 달라도 행동은 같이 한다!”, “책임은 나눌수록 강해진다!”, “전체가 하나처럼!” 이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한동안 연락이 없어 이상했는데, 한참 지나서야 까닭을 알았다. 그 노동조합에 다녀온 후배 활동가가 웃으며 사연을 전해준다. “하 선배가 교육할 때 ‘근로자’란 단어를 사용했다면서요. 그래서 인연을 끊었다던데….” 절반쯤은 농담이겠고 인연을 끊은 이유가 어찌 그것 하나뿐이겠냐마는 민주노총 핵심 사업장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민주노조’에 와서 교육을 한다는 강사가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두고두고 간부들 입에 오르내렸을 만큼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상한 점이 나는 ‘근로자’란 표현을 사용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강의할 때마다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니 무심결에라도 ‘근로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 짐작으로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노동법 조문을 설명할 때, 원문 그대로 옮기면서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의를 들은 사람이 앞뒤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강사 입에서 ‘근로자’라는 단어가 나왔던 장면만 기억하고 조리돌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억울한 느낌이 들기는 매한가지다. 지난 학기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한 사람 있었다. 그 학생의 기말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대목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16세 이상 노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라고 한다. 그래서 공무원, 교수, 의사, 환경미화원 등이 다 노동자이다. 이 수업을 들어보니까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 ‘근로자’라는 호칭도 있는 게 신기하다.” 한자를 주로 쓰는 중국에서 태어난 청년이 20여년 살아오는 동안 ‘근로자’란 단어를 보지 못했다가 한국에 와서 처음 보고 신기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중국에 ‘근로자’란 단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을 정도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단어였을 것이다. ‘근로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단어이다. ‘노동자’는 근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새롭게 나타난 ‘임금생활자’를 뜻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동’ 역시 단순히 ‘부지런하게 일한다’는 뜻의 ‘근로’와 달리,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임금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널리 사용되는 단어이다. 시대에 역행하여 ‘근로’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조선근로정신대’나 한국전쟁 당시의 ‘전시근로동원법’처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몇 해 전 경기도교육청이 ‘민주시민’ 과목을 개설하고 교과서를 개발했을 때, 그 교과서의 노동 단원 집필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로 참여한 교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학교 급식 아주머니’라는 표현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아주머니’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과 ‘노동자’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한동안 맞서다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표기하기로 결론을 맺었다. 최근 이언주 의원의 “밥하는 아줌마” 발언이 논란이 되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활동가가 직면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조직 대상인 노동자들조차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조를 조직하느라고 고생하는 활동가가 “1000명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5명이 참석했다”고 하소연을 하자, 다른 사람이 “천명 문자에 5명이면 성공하셨네요”라고 위로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무시해도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