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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2 18:33 수정 : 2017.09.12 19:09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기간제 교사 한 사람을 선발하는 데 수십장의 이력서가 쌓이고 강의 시연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 뒤 정규직 교사와 다름없이 몇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기간제 교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그 경력을 인정하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인턴 계약기간 1년이 끝난 뒤 그들 중 10%만 정규직 발령을 받는 조건으로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1년 동안 인턴의 삶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화장실 한번 마음대로 못 가면서 일했어요.”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여러 번 들은 말이다.

그 1년의 삶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비정규직 고용계약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비정규직 당사자의 삶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지속·포용 성장’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면 향후 10년간 연평균 1.1%의 성장률 상승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분석은 전문가들로부터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성장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둘째 이유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것이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면 건전한 내수가 창출되지 않아 정부가 꿈꾸는 ‘소득 주도 성장’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이유는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는 종들은 수만년 세월 동안 불평등에는 저항하는 유전인자가 생성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연구성과 등도 우리에게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 발전 방향이라고 깨우쳐준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던 것을 우리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두 분 교사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하려고 한다”는 국민소통수석의 설명을 들으며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말로만 끝나면 어쩌나… 우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최소한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서둘러 마련했고, 6월27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켜 두 기간제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무렵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도 이 정도까지는 할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두터운 신뢰가 있다”는 글을 썼더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글의 정작 중요한 부분은 그다음에 이어진 내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부에 요구해야만 이루어질 것이고, 앞으로 노동자들의 그러한 요구에 정부가 어떻게 답하느냐 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성패 여부를 가름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한낱 기우이기를 바랐지만 불행하게도 거의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정부가 기간제 교사 4만6000여명(사립학교 포함)을 결국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 11일 ‘교육 분야 비정규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노동계 및 교육 관련 단체 추천 인사와 고용노동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서 일곱 차례 심의를 거쳐 그러한 방침을 확정했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뿐만 아니라 영어회화 전문강사, 초등 스포츠강사, 산학겸임교사, 교과교실제 강사, 다문화언어 강사 등도 모두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치원 돌봄교실 강사와 유치원 방과후과정 강사 등 1천여명만 기간제 전환 대상에 포함됐을 뿐이다.

그동안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비정규직 교사들은 농락당한 기분이었고, 교육 현장에는 갈등만 부추긴 셈이다. 이를 ‘희망 고문’이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다. 교사 임용시험이라는 채용 과정의 공정성이 무너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 가장 큰 핑계다. 기간제 교사 한 사람을 선발하는 데 수십장의 이력서가 쌓이고 강의 시연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 뒤 정규직 교사와 다름없이 몇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기간제 교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그 경력을 인정하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제부터 다시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한낱 ‘개선 방안’이 절대로 끝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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