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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6 18:24 수정 : 2018.06.27 08:38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최후의 2인’으로 남은 조합 간부들은 “회사가 우리를 죽일 수는 없을 거예요”라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수백 명의 조합원이 불과 한 달 남짓 기간에 두 명으로 줄어드는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노동조합을 탄압해도 벌받지 않으니까…

최규석 작가의 웹툰과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은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1년에 여섯 번 한답니다. 요구안 작성, 홍보물 제작, 서명운동, 연설문 작성까지…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사회과 수업 3분의 1이 교섭 전략 짜는 거라네.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치니까 그런 나라들에서는 판사, 교수 같은 사람들도 노조를 만드는 거요. 경찰, 소방관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스웨덴 이런 데는 군인노조도 있어요. 군대에 노조 있어 봐. 군납 비리, 성추행, 의문사 이런 거 쉽게 되겠어요?”

주인공 이수인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저기…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구고신은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을 탄압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외국인 경영자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모르면 오히려 바보다. 지난 5월 말, 삼성의 노동조합 와해 공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은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검찰 조사 결과 노조 대응 조직을 이끌며 노조 와해 공작을 지시하고, 노조 활동이 활발한 사업장들의 위장폐업을 유도하고, 그 대가로 수억원의 금품을 제공하고, 노조 탄압에 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유족에게 수억원을 건네 장례 일정에 차질을 빚도록 한 혐의를 받는 경영자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은 다른 경영자들에게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면세점이 속한 재벌의 총수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법정구속되는 등 경영이 악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동안 상급단체 없이 활동했던 면세점 노조 간부들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회사 관리자들이 노조 간부를 한 사람씩 불러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안 된다고 회유했지만, 대의원대회에서는 전원 찬성으로 민주노총 가입 결의가 이뤄졌다.

대의원대회 내용이 조합원들에게 통보되기 몇시간 전부터 회사 직원들의 ‘블라인드’ 익명게시판에는 민주노총 가입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회사가 블라인드 관리팀을 운영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었는데, 올라오는 글들의 내용을 보며 그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민주노총은 습관적으로 파업한다, 전문 시위꾼들이다, 시위 현장에 조합원을 강제동원한다, 정치투쟁에만 관심 있다, 조합비도 많이 갖다 바친다… 등 민주노총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노조 위원장 개인을 비난하며 음해하는 글들도 올라왔는데, 회사 쪽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노동조합이 조합원 간담회와 교육 일정을 잡았으나 회사가 갑자기 다른 교육 일정을 잡아 조합원들은 모이기조차 어려웠다. 노조 위원장을 따라다니며 밀착감시하는 보안요원들을 배치했고, 위원장의 지문인증을 삭제해 사무실에 들어가 조합원들을 만날 수도 없게 했다.

회사에는 새 노동조합이 생겼다. 이쯤 되면 거의 교과서다. 새 노조로 늦게 옮겨 오는 조합원은 불이익을 받을 거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단톡방에서 기존 노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직원이 인사이동을 당하기도 했다.

탈퇴하는 조합원은 미안하다고 울고, 말리는 간부는 부담을 줘 미안하다며 우는 일이 날마다 벌어졌다. “새 노조로 올 거면 민주노총 가입 전으로 돌려놓고 오라”는 말까지 나오자 위원장은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압박을 받기 전에 빨리 건너가라”며 조합원 등을 떠밀어 보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민주노총 가입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며 단 한 명의 조합원이 위원장 곁에 남았다.

‘최후의 2인’으로 남은 두 명의 조합 간부는 “회사가 우리를 죽일 수는 없을 거예요”라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수백 명의 조합원이 불과 한 달 남짓 기간에 두 명으로 줄어드는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노동조합을 탄압해도 벌받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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