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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1 17:51 수정 : 2018.08.21 21:07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대한항공에서 노동조합을 민주화시켜 보려고 노력했던 직원들이 “20년 넘게 진급이 안 되고”, 노동자가 굴뚝에서 농성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는 2만 피트 상공에서 농성하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견뎌야 하는 일이 20년 넘게 벌어졌으면서도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사실이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노동행위’라는 용어를 ‘회사가 노동자에게 행한 부당한 행위’ 정도로 잘못 알고 있다. 신문사 기자나 방송사 아나운서 등이 ‘부당노동행위’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그렇게 잘못 이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당노동행위’란 어디까지나 노동법상의 용어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81조에 구체적으로 규정한 행위들을 말한다.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했는데 그 실제 사유가 직장 상사의 잘못된 경영철학을 비난했다든가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노동청에 고발한 것 등이라면 그 해고는 ‘부당한 해고’ 또는 ‘부당한 행위’이지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것이 실제 해고 사유라면 그때는 비로소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곧 부당노동행위란 회사(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한 행위들 중에서 ‘노동조합과 관련된’ 부당한 행위만을 일컫는다.

그럼에도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법조인들 중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흔히 잘못 사용하고 있을 때에는 ‘광의(넓은 의미)의 부당노동행위’로, 전문가들이 사용할 때에는 ‘협의(좁은 의미)의 부당노동행위’로 구분해서 사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동조합법 제81조에서는 부당노동행위를 비교적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경우만이 아니라 “가입하려고” 한 경우에도 일체의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아니할 것”, “탈퇴할 것”, “특정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등 노동조합에 회사가 “개입하는 행위” 일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처벌 규정도 있다.

노동조합법 부당노동행위 규정의 의미는 한마디로 “회사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바늘 끝만큼도 간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사관계를 노사 자율에 맡기지 않고 그러한 사법적 규제 장치를 마련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맞서는 대립구도 속에서는 철저하게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회사는 대개 “회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으나 직원 여러분들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업무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의 내용으로 공고문을 게시하거나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의사 표시를 한다. 이것은 회사가 노동조합 활동에 바늘 끝만큼이라도 개입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동조합은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저해가 되는 요소로서” 따위의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라면(실제로 비일비재하다) 명백히 회사가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한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회사의 그러한 행위들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는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제시한다. 그중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회사가 노동조합에 개입하려고 한 ‘내심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용자 마음속(‘내심’)에 노동조합 탄압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피해자인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대한항공에서 노동조합을 민주화시켜 보려고 노력했던 직원들이 “20년 넘게 진급이 안 되고”, “국내선 전담팀으로 발령받고”, “항상 혼자 식사를 해야 하고”, “옆에서 식사를 같이 해준 동료는 다음날부터 똑같은 불이익을 받게 되고” 노동자가 굴뚝에서 농성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는 2만 피트 상공에서 농성하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깨물며 견뎌야 하는 일이 20년 넘게 벌어졌으면서도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은 사실이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갑질들이 벌어져왔다는 것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과거의 정부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치자.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회사의 그러한 부당노동행위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이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더 이상 참지 못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8월24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항공재벌 갑질 격파 시민행동 촛불문화제’를 연다. 그날 항공사 노동자들이 가면을 벗을 수 있을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시민이 그들과 함께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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