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경제학을 전공한 자녀가 굳이 유럽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고 염려하는 부모를 만났다. “유럽에서 학위 받고 와봐야 대학은 물론이고 기업에도 취직이 잘 안 된다”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유럽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한국 대학에 취업하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주류 경제학자가 대부분인 한국 대학에서 비주류 경제학자를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벨 경제학상보다 더 권위 있다고 인정하는 뮈르달상을 받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동안 몇번이나 한국 대학에 자리를 잡기 원했으나 임용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둘째, 한국 대학에서 영어 강의 능력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문학이나 독문학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더 쉽게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고 불어를 프랑스 사람 못지않게 구사하는 학자도 대학에 전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시간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대학에서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고 온 한국 대학의 많은 교수들은 논문에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등의 용어가 등장하면 이미 낡은 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은 그 교수들이 쓴 교과서로 공부하고 대학생들 역시 그 교수들 밑에서 경제학을 배운다. 외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감소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연구가 일찌감치 많이 나왔는데도, 한국 교과서에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실리기도 했었다. 1909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1979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 집권 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70년 만에 최저임금제가 폐지됐다가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면서 다시 제도가 부활됐다. 경영자들이 “해고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주장하자 50여개 대학이 참여하는 80여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최저임금과 일자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고용과 해고는 최저임금제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10년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비비시>(BBC) 방송에 나와 “최저임금제는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정책이며 최저임금 제도가 실업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994년 논문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데일 벨먼 미시간주립대 교수 역시 2013년 논문을 통해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유의미한 부정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내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2.87%의 인상률로 결정됐다.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9년 2.7%,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75% 다음으로 낮은 인상률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이에 대해 “최근 경제 사회 여건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고 본다”라고 평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해 16.4%와 올해 10.9%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는 뜻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과연 그렇게 과도한 것이었을까? 2014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했던 연방 최저임금 인상률은 무려 39%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신년 국정연설에서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저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고 일갈했다. 이 연설로 <엔비시>(NBC)가 조사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한국이었으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학계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영국 보수당과 미국 민주당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보수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에 힘을 받은 경영계는 주휴수당 폐지에도 나설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보장됐던 권리마저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자칫 노동자들에게 노사정 협의에 참여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 주는 나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양보할 것을 이미 정해 놓고 설득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면, 민주노총한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라는 요구는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칼럼 |
[하종강 칼럼]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경제학을 전공한 자녀가 굳이 유럽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고 염려하는 부모를 만났다. “유럽에서 학위 받고 와봐야 대학은 물론이고 기업에도 취직이 잘 안 된다”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유럽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한국 대학에 취업하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주류 경제학자가 대부분인 한국 대학에서 비주류 경제학자를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벨 경제학상보다 더 권위 있다고 인정하는 뮈르달상을 받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동안 몇번이나 한국 대학에 자리를 잡기 원했으나 임용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둘째, 한국 대학에서 영어 강의 능력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문학이나 독문학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더 쉽게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고 불어를 프랑스 사람 못지않게 구사하는 학자도 대학에 전임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시간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대학에서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고 온 한국 대학의 많은 교수들은 논문에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등의 용어가 등장하면 이미 낡은 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은 그 교수들이 쓴 교과서로 공부하고 대학생들 역시 그 교수들 밑에서 경제학을 배운다. 외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감소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연구가 일찌감치 많이 나왔는데도, 한국 교과서에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실리기도 했었다. 1909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1979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 집권 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70년 만에 최저임금제가 폐지됐다가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면서 다시 제도가 부활됐다. 경영자들이 “해고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주장하자 50여개 대학이 참여하는 80여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최저임금과 일자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고용과 해고는 최저임금제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10년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비비시>(BBC) 방송에 나와 “최저임금제는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인 정책이며 최저임금 제도가 실업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994년 논문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데일 벨먼 미시간주립대 교수 역시 2013년 논문을 통해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유의미한 부정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내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2.87%의 인상률로 결정됐다.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9년 2.7%,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75% 다음으로 낮은 인상률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이에 대해 “최근 경제 사회 여건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고 본다”라고 평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해 16.4%와 올해 10.9%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는 뜻이다. 지난 2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과연 그렇게 과도한 것이었을까? 2014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했던 연방 최저임금 인상률은 무려 39%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신년 국정연설에서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저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고 일갈했다. 이 연설로 <엔비시>(NBC)가 조사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90%까지 치솟았다. 한국이었으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영국이나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학계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영국 보수당과 미국 민주당의 시각으로 볼 때에도 보수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에 힘을 받은 경영계는 주휴수당 폐지에도 나설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보장됐던 권리마저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자칫 노동자들에게 노사정 협의에 참여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 주는 나쁜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양보할 것을 이미 정해 놓고 설득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면, 민주노총한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라는 요구는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