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대학생들이 모이는 행사 이름에 ‘알’ 자가 들어가 있었고 포스터에는 병아리가 달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새로운 지식을 깨치는 ‘알다’와 새롭게 태어나는 변증법적 ‘진보’를 동시에 뜻하는 절묘한 작명이다. 우리 세대는 이런 포스터를 보면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남기고 간 이 글귀가 많은 청년들 인생의 변환점이 되기도 했다. 올해가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기도 해서 ‘아브락사스’의 의미와 최근 제기된 <데미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의 도입부 내용으로 준비했다. 강의를 시작하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읽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라고 물었다. 100여명쯤 되는 대학생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세대는 <데미안>을 모르면 요즘 방탄소년단(BTS)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거든요”라는 말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물쩍 넘겼다. 그 자리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쓴소리를 해봐야 꼰대가 될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생들이 참여하는 ‘인문학 주간’ 행사에 저자로 초청받았다. 오전에는 100명 가까이 되는 강좌 신청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과 심층 토론을 하는 순서로 짜였다. 인문학 주간 행사에 초청된 작가들의 책을 모두 완독한 학생들이었다. 오후 토론 장소에서는 얼굴에 ‘공부 잘하고 성실함’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인상의 중학생 다섯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맞은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듯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토론에 참여했다. 한 학생이 질문했다. “작가님도 잡혀가 보신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하다가 네번이나 잡혀갔는걸요”라고 답하자, 그 학생은 “아, 옛날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질의응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른 의미를 찾아보려는 추가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세대가 인생을 걸고 했던 ‘운동’이 요즘 청소년에게는 단지 ‘옛날 사람’이라는 증표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했던 일을 그렇게 가볍게 치부하면 되겠느냐”고 말해 봐야 꼰대가 될 뿐이다. 이런 청소년들을 만나 무언가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을 앞으로 계속하려면 우리 세대가 이 변화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청년들에게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관 앞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 척박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 올라가 55일 동안이나 단식을 하고 60일 넘게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사건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지난 28년 동안 납치·감금을 당하고, 증거를 조작당해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퇴근길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각목으로 폭행당해 20일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아내까지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모든 일이 노조를 만든 자신을 미워하는 회사의 사주를 받아 생긴 일이라고 굳게 믿는 해고노동자의 삶이 앞으로 여러분이 사회에 나와서 겪어야 할 일이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이 며칠 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차에 우리 세대 노동운동의 산증인들을 만나는 귀한 경험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메이드 인(人) 인천’ 기획 전시다. 미시사 연구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획이 가능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1970~80년대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이 나를 전시실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말했다. “이거 어머니가 나 시집갈 때 주시겠다고 혼수로 준비하셨던 솜이불이야.” 노동운동에 일생을 바친 이총각씨는 비혼이다. 해고된 뒤 10개의 민사소송을 거쳐 10년 만에 복직하고 마침내 노조위원장까지 했던 박남수씨가 설명해줬다. “이거 내가 결혼할 때 아내가 혼수로 장만해 왔던 화장대야.” 박남수씨가 복직하면서 나에게 물려준 노동상담소에서 내가 23년 동안 일했다. 이 선배들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 노동운동도 없었다. 잠시 짬을 내 이런 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은 씨앗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5월에 시작된 전시가 8월18일까지 이어진다. 이제 꼭 나흘 남았다.
칼럼 |
[하종강 칼럼] 이총각의 솜이불, 박남수의 화장대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대학생들이 모이는 행사 이름에 ‘알’ 자가 들어가 있었고 포스터에는 병아리가 달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새로운 지식을 깨치는 ‘알다’와 새롭게 태어나는 변증법적 ‘진보’를 동시에 뜻하는 절묘한 작명이다. 우리 세대는 이런 포스터를 보면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남기고 간 이 글귀가 많은 청년들 인생의 변환점이 되기도 했다. 올해가 <데미안> 출간 100주년이기도 해서 ‘아브락사스’의 의미와 최근 제기된 <데미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강의 도입부 내용으로 준비했다. 강의를 시작하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읽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라고 물었다. 100여명쯤 되는 대학생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세대는 <데미안>을 모르면 요즘 방탄소년단(BTS)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거든요”라는 말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물쩍 넘겼다. 그 자리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쓴소리를 해봐야 꼰대가 될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생들이 참여하는 ‘인문학 주간’ 행사에 저자로 초청받았다. 오전에는 100명 가까이 되는 강좌 신청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과 심층 토론을 하는 순서로 짜였다. 인문학 주간 행사에 초청된 작가들의 책을 모두 완독한 학생들이었다. 오후 토론 장소에서는 얼굴에 ‘공부 잘하고 성실함’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인상의 중학생 다섯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처럼 맞은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듯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토론에 참여했다. 한 학생이 질문했다. “작가님도 잡혀가 보신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하다가 네번이나 잡혀갔는걸요”라고 답하자, 그 학생은 “아, 옛날 사람이구나”라고 했다. 질의응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른 의미를 찾아보려는 추가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세대가 인생을 걸고 했던 ‘운동’이 요즘 청소년에게는 단지 ‘옛날 사람’이라는 증표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했던 일을 그렇게 가볍게 치부하면 되겠느냐”고 말해 봐야 꼰대가 될 뿐이다. 이런 청소년들을 만나 무언가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을 앞으로 계속하려면 우리 세대가 이 변화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청년들에게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관 앞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 척박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 올라가 55일 동안이나 단식을 하고 60일 넘게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사건이 바로 여러분의 문제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지난 28년 동안 납치·감금을 당하고, 증거를 조작당해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퇴근길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각목으로 폭행당해 20일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아내까지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모든 일이 노조를 만든 자신을 미워하는 회사의 사주를 받아 생긴 일이라고 굳게 믿는 해고노동자의 삶이 앞으로 여러분이 사회에 나와서 겪어야 할 일이라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이 며칠 동안 마음에서 떠나지 않던 차에 우리 세대 노동운동의 산증인들을 만나는 귀한 경험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메이드 인(人) 인천’ 기획 전시다. 미시사 연구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획이 가능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1970~80년대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이 나를 전시실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말했다. “이거 어머니가 나 시집갈 때 주시겠다고 혼수로 준비하셨던 솜이불이야.” 노동운동에 일생을 바친 이총각씨는 비혼이다. 해고된 뒤 10개의 민사소송을 거쳐 10년 만에 복직하고 마침내 노조위원장까지 했던 박남수씨가 설명해줬다. “이거 내가 결혼할 때 아내가 혼수로 장만해 왔던 화장대야.” 박남수씨가 복직하면서 나에게 물려준 노동상담소에서 내가 23년 동안 일했다. 이 선배들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 노동운동도 없었다. 잠시 짬을 내 이런 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은 씨앗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5월에 시작된 전시가 8월18일까지 이어진다. 이제 꼭 나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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