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5 18:10
수정 : 2019.11.06 12:37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특성화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뒤 교사 한 사람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외모는 거의 대학생이나 다름없는 앳된 모습이었다.
“저는 ○○담당 교사인데요,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잘 알거든요. △△대학에 그런 애들 정말 많잖아요. 저도 대학 다니는 동안 그렇게 살았거든요. 나중에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임용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교사가 됐지만요. 지금도 제 친구들은 편의점 알바 같은 일이나 하면서 정말 생각 없이 살아요. 손님 없는 시간에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나 자기 계발도 전혀 하지 않고 살거든요.”
장황한 설명을 들으며 어떤 질문을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궁금했는데, 그가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게 생각 없이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해줘야 하나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날 내가 그 교사에게 어쭙잖고 장황하게 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그 친구가 평범한 사람이고, 선생님이 매우 특별한 사람인 거다. 당신처럼 되지 못한 그 친구가 ‘루저’(패배자)처럼 취급돼 무시당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특혜를 누리는 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사회다. 그런 사회가 실제로 많이 있고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어느 시대에나 노동자에게 조금이라도 일을 더 많이 시키려고 노력하는 세력과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일을 더 적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역사는 후자의 편이었다. 과장해 표현하자면, 인류 역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게을러지면서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이런 인류 역사 전체의 흐름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교사는 “아, 사람들이 조금씩 더 게을러지면서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거군요”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그 교사의 야무진 표정과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친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지금 최저임금만큼만 받아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최저임금만 받아서는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그 친구에게도 당연히 최저임금은 보장돼야 하고 해마다 계속 인상하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면, 그 교사는 동의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국 교수 딸 문제로 많은 청년이 “우리 사회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분노했다. 그 청년들 중에는 조국 교수 딸과 유사하게 특수목적고 재학 시절 논문 제1저자나 공동 저자로 등재된 경력의 소유자도 있다지만 솔직히 나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노동자는 그런 세상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다. 이미 최상위 계층이거나 앞으로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쉽게 최상위 계층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드러내는 분노, 곧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 와중에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대입 공정성 회복의 해결책으로 제시하자, 서민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데는 수시보다 정시가 유리하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수시를 공정하게 변화시키려는 그동안의 많은 노력은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개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하는 논란이 들끓었다. 어떤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든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변할 수 없는 신념은, 우리 자녀들이 앞으로 어떤 직종에 취업하든 대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처럼 대기업 정규직이나 의사·교수·용접공·목수의 소득에 큰 차이가 없는 사회가 되면, 그래서 성적에 관계없이 “음악을 크게 들으며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벽돌공을 선택하고, 대학교수 부인과 배관공 남편, 용접공 부인과 의사 남편 부부들이 우리 이웃에서 자연스레 살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이 조국 교수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자녀처럼 되지 못한다 해도 신경 쓸 일이 없다. 결국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직종 간 임금 차별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더욱 매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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