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3 18:00
수정 : 2019.12.09 14:12
배달 노동자들이 설립한 노조가 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는 것은 이들이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새롭게 출현하는 고용계약 형태를 법·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핑계를 대지만 우선 이렇게라도 하면 된다. 서울시에서 가능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가능하다.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플랫폼 노동자’를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자. 역에 있는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기차에 타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짐을 나르기도 하고, 간단한 식음료를 사고팔기도 한다. 마치 그것처럼 스마트폰에 설치돼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 사람들이 일감을 주기도 하고, 구하기도 하고, 업무 내용을 지시하거나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앱’이 기차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업무 내용도 매우 다양해져서 요즘은 대신 줄 서서 기다려주는 것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일이 가능하다. 얼마 전 학교 연구실을 옮길 때에도 ‘앱’에 이러저러한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고 올렸더니 바로 응답이 왔다. “방금 전역해서 힘이 팔팔합니다. 등록금을 마련하는 중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들에게 일을 맡겼더니 와서 몇시간 만에 뚝딱 일을 해치웠다.
그 플랫폼 노동자의 대표적 형태인 배달 대행 노동자를 ‘근로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조선왕조실록>에도 23번이나 나오는 ‘근로자’라는 단어보다 근대 이후 출현한 피고용자 직장인을 일컫는 ‘노동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노동법상 용어가 ‘근로자’여서 노동법에 관한 설명을 할 때에는 ‘근로자’란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육법전서에 ‘노동자’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지난 10월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은 배달 노동자들이 제기한 체불임금 진정 사건에 대해 이들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했다. 정해진 장소에 출근하고 점심시간까지 보고해야 하는 등 업무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아 근로자로 보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월24일 경남 진주에서 만 19살의 배달 노동자가 가로등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그 노동자는 출퇴근은 물론 휴무일 조정이나 식사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까지 대화방을 통해 보고해야 했고, 지각하면 벌금을 내야 했다. 그렇다면 업무 종속성이 ‘근로자’에 해당할 만큼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상의 산재보험 적용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
현행 노동법에선 ‘근로자’에 대해, 개별 법 조항마다 각기 다른 정의를 내린다. 근로기준법 2조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는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라고 규정한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이라고 규정한 반면 노조법은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좀더 넓게 규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과 비슷한 금전적 대가를 받고 있다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과연 어디까지를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아니지만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해석과 판결이 오락가락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서울시는 배달 노동자들이 설립한 ‘서울라이더유니온’에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노조를 설립한 노동자들에게 설립신고필증은 목숨처럼 소중한 서류다. 법 형식상 노동조합 설립이 엄연히 신고제이지만 허가제처럼 시행되기 때문이다. 노조를 설립한 뒤 행정관청에 신고를 하고 설립신고필증을 받아야만 사법·행정기관에서 합법적 노조로 인정한다. 그 증서를 받을 때까지 “피가 마르는” 긴장 상태에서 회사의 온갖 탄압을 견디어 내야 비로소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과거 설립신고필증을 받지 못해 무산된 노조 설립 시도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설립신고필증을 액자에 고이 담아 벽에 보란 듯 걸어놓는다. 슬픈 장면이다.
배달 노동자들이 설립한 노조가 설립신고필증을 받았다는 것은 이들이 노조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새롭게 출현하는 고용계약 형태를 법·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핑계를 대지만 우선 이렇게라도 하면 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해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노동조건을 단체협약을 통해 확보할 수도 있다. 서울시에서 가능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기업의 노동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지레 겁내지 않으면 된다. 기업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회피하는 것은 자유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꼼수 경영’이고 자본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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