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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3 18:14 수정 : 2018.08.23 19:10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정치권에서 대체복무제를 위한 병역법 개정안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구태의연한 군사주의로 대체복무를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안들이다.인식식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대체복무안이 가장 긴 44개월, 나머지도 2배 수준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대체복무가 현역 복무의 2배를 넘는 나라는 드물다. 대만, 덴마크, 스웨덴은 대체복무 기간과 현역병 복무 기간이 거의 동일하며, 그리스와 스페인 정도가 현역의 1.5배다. 핀란드가 일반 군복무에 견줘 2배 수준이지만 이는 군복무가 가장 긴 병과와 맞춘 것이다.

이들 국가는 대체로 현역병 복무가 6개월에서 1년 정도다. 다시 말해, 단순히 비율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기간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 상황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의 장단을 따지기보다 현역병이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복무해야 하는지를 먼저 따지는 게 옳다. 그러므로 21개월의 2배가 넘는 44개월을 복무하는 것은 누가 봐도 징벌적 성격을 띤다.

유엔은 1.5배가 넘는 대체복무 기간은 징벌적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대체복무는 이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의사에 맞게 국방부가 아닌 대체복무 판정 기관을 통해 비군사적 업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해 군복무 중 또는 예비군도 신청할 수 있게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병역기피자 양산을 막기 위해 대체복무 인원을 제한하는데, 한국의 시민사회안도 같은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대체복무자들을 지뢰 제거에 투입한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 발상은 그들이 군대에 관한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공병 중 폭발물 처리반은 숙련된 요원들의 특수부대다. 군 생활을 십수년 한 준사관과 부사관들로 구성된 부대의 임무를 일반인에게 맡기자는 발상은 옛 소련의 형벌부대(징벌 목적의 범죄자 돌격대)와 같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인명 손실을 막으려고 지뢰 제거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이 대체복무제를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보수 야당이 이상한 대안을 내놓는 것일 수도 있다. 19세기 징병제는 생각보다 여유가 많았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은 총력전의 성격을 띠고, 대규모 병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국가는 개인적, 종교적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됐다. 이에 따라 개인적, 종교적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징병을 갈음할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대체복무다.

미국은 1차대전 이후 대체복무제를 확립했는데, 주로 종교인들이 선택했다. 한국의 인식과는 달리 장로교, 침례교, 루터교 등 다양한 종파들이 이 제도를 거쳐갔다. 이들은 비군사 임무라는 취지에 맞게 후방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거나 산림 관리를 맡았다. 사우스다코타의 디어필드 댐은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의 일환으로 투입되어 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징병제의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대체복무와 현역 복무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현역들을 단순히 소모품으로 여기는 국방부의 폐단이 개선되고, 사회 전반의 자유권과 기본권에 대한 인식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다. 아울러 평화주의 신념으로 군사주의 적폐를 사회 전반에서 희석할 수도 있다. 대체복무는 그 자체로 다양한 인간안보의 일부다. 이제 한국도 오래된 군사정권의 구습에서 벗어나 한단계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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