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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7 16:21 수정 : 2019.06.28 15:17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 공동대표

나는 학령기 학교에서 장애인과 함께 공부한 기억이 없다. 군을 제대한 1983년, 행글라이딩 추락 사고로 척수손상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다. 24살 나이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무감각해진 하반신처럼 5년을 집구석에 갇혀 살았다. 죽음의 터널을 지나 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훈련과에 입학했다. 그해 11월1일. 정부는 장애인등록제를 실시한다고 ‘손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등록하라고 했다. 복지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의사 진단서를 첨부해 장애인등록을 했다. 장애인등록증에는 ‘지체장애 1급’이라 쓰여 있었다.

2010년 9월13일. 장애등급제 때문에 국민연금 장애인지원센터를 점거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정부가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인연금을 받고 있던 중증장애인에게 강화된 등급심사를 의무적으로 다시 받게 해 많은 이들이 수급자격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예산이 많이 증액되는 것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에게 생명 같은 서비스 자격을 탈락시키는 데 장애등급을 활용한 것이다.

1842일. 이전 정부에서도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아 5년 내내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민명령 1호로 장애인들에게 약속했다.

2019년 7월1일. 드디어 31년 만에 장애등급제는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장애를 의학적 ‘등급’ 대신 ‘정도’로 변경하고, 활동지원 등 돌봄서비스 제공에 ‘종합조사’를 통해 장애인 개인의 필요도와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는 취지다. 종합조사는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절대적이던 의학적 등급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장애등급제 폐지는 힘들었던 투쟁만큼 의미있는 희망을 담고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 폐지 전과 후의 역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의 삭감과 탈락으로 ‘등급’ 대신 ‘종합조사표’로의 변화는 ‘강화된 점수제일 뿐이다’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장애인들의 우려를 거두려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라는 새로운 그릇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 예산이 대폭 담겨야 한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전문에서 ‘장애’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라 규정하고 있다. ‘장애’는 ‘손상을 당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게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저해하는 태도’와 ‘환경적 장벽’ 간의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저해하는 태도’와 ‘환경적 장벽’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동네 학교에서 교육받는 것조차도 거부당했던 차별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이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얼마 전 41살 자폐장애 아들을 목 졸라 죽인 어머니가 집행유예로 선처를 받고 풀려난 기사에 안타까워 눈물 흘리는 댓글이 넘쳐났다.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인 피고인이 법에 따른 충분한 보호나 지원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어렵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가 단지 선언적인 것에 그치지 아니함은 명백하다”는 법원 판결에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오는 7월1일. 우리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의 전동(前動) 행진’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명령 1호가 이른바 ‘예산 실링’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효과 없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 모두의 협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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