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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4 17:34 수정 : 2019.07.04 19:18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연과 돌발이 역사적 대변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로 시작된 첫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즉흥이 만든 세기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판문점에서의 첫 북-미 정상회담, 첫 남·북·미 정상회동만으로도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추후 협상단의 논의에 따라서는 더 큰 변화를 이끌 잠재력까지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사건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첫째, 이번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동북아의 냉전이 명실상부 해체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구의 냉전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사라진 이후에도 동북아는 냉전의 한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해왔다. 남아 있는 냉전의 상징은 남북의 군사분계선과 판문점이 되어왔다. 지난해 1, 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판문점은 동북아 냉전의 상징에서 평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북 정상의 만남만으로 동북아 냉전 해체를 추동하기엔 부족했다. 동북아 긴장·갈등의 당사국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손잡는 모습이 필요했다. 그게 이제 실현되었다. 악수뿐만 아니라 냉전 해체의 방안을 두고 한시간이나 깊이 논의했다. 판문점에 냉기가 이제 사라져갈 때가 되었다는 기대를 가져보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북-미가 구조적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전쟁, 이후 양측의 다양한 상징조작과 악마화, 평화협정 협상을 둘러싼 갈등, 북-미 제네바 합의 이행 과정에서의 실랑이 등을 통해 북-미의 불신은 구조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기저에는 그 구조화된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회담 제안과 성사 과정은 불신을 딛고 상호인정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제사회론이 말하는 것처럼 협상의 진전은 상호인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번 회담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셋째,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트럼프의 트위터를 북한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가 즉각 나서 공식회담 제안을 독촉했다. 직후 판문점에서 양국이 직접 논의했고, 세기적 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우 적극적임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의 전제는 비핵화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논리적으로 근거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고 하겠다.

이처럼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정상회담이지만 실제로 비핵화 진전의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제 다시 악마가 산다는 디테일로 들어가야 한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미국의 빅딜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북한이 핵을 먼저 폐기해야 한다는 빅딜 안을 김정은 위원장이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반면 대선 국면을 맞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빅딜 이외의 안은 감표 요인이다. 그래서 받기 어렵다. 북한이 미래 핵(핵시설)에다가 현재 핵(핵무기)을 더해서 내놓고, 미국이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는 것이 합리적일 텐데 미국은 모든 핵 프로그램과 대량살상무기 폐기 이전 제재 해제에 부정적이다. 다시 긴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제 향연은 끝났다. 여운은 짧을수록 좋다. 역사적 회담은 북-미가 협상의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자양분으로 남겨 두면 된다. 북-미가 접근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가용 외교력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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