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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6 18:27 수정 : 2006.08.16 20:01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 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 주고, 소방대도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일까? 아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나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이다. 다음 글은 또 어떨까.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우리 군이 자주적인 국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는 크다. … 국가 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전통제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만으로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세력이 거세게 공격하는 ‘환수’ ‘자주적 국방’ ‘안보에 대한 완전한 책임’ 등의 용어가 다 나온다. 〈조선일보〉 1994년 12월1일치 사설이다. 이 신문은 지금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당시로부터 15~18년 뒤인 2009~12년 사이에 이뤄질 예정인데, ‘가급적 빠른 시일’은 도대체 언제일까?

자주국방은 해야 하지만 노무현 정부를 믿을 수가 없어서 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가 ‘노무현 끌어내리기’를 위한 정치적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고 의심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은 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은 “조용하게,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 하에 …” 이뤄져야 한다고 하는데, 비교적 조용하고 무난하게 진행되는 협의를 시끄럽고 복잡하게 만들려는 건 바로 자신이 아닌가.

자주국방은 왜 하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다. 물론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성격의 자주국방을, 어떻게 추진하느냐는 문제도 중요하다.

박정희의 자주국방 노력은 실패했다. 핵 개발까지 포함해 상대를 압도하려는 냉전형·갈등심화형 자주국방이었던데다 국내의 비민주적 억압구조를 심화시키면서 추진됐기 때문이다. 이후 80년대에는 취약한 정권 정통성 문제까지 더해져 자주국방론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 동북아는 지구촌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이다. 국내총생산을 합치면 세계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는 동북아 번영의 주요한 축이다. ‘한반도-동북아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각국은 서로 경쟁하면서 협력한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고, 관심은 북한이 주변국에 불안요인이 되지 않으면서 개혁·개방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이런 상황은 과거와 달리 평화관리형·공동번영형 자주국방이 가능한 안보환경을 이룬다. 한국이 북한의 전체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국방비를 쓰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한-미 동맹은 지속 가능한 ‘가치의 동맹’이다. 하지만 지구적 규모에서 장기패권 구조를 강화하려는 미국과,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을 이뤄내야 하는 한국의 정치·군사적 이해관계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 한·미를 무조건 일체로 보는 것은 냉전 시기의 타성일 뿐이다. 과거에 안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미래도 개척하지 못한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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